[생명의 삶] 사랑하면 온전히 따릅니다(아가 6 : 11-7:13)

오늘의 찬양
(새 390 통 444 예수가 거느리시니)
예수가 거느리시니 즐겁고 평안하구나 주야에 자고 깨는 것 예수가 거느리시네/ 때때로 괴롬당하면 때때로 기쁨 누리네 풍파 중에 지키시고 평안히 인도하시네/ (후렴) 주 날 항상 돌보시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 주 날 항상 돌보시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

존귀한 아내 6:11~7:9
11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
12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를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에 이르게 하였구나
13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
14
(13절에 포함)
1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숙련공의 손이 만든 구슬 꿰미 같구나
2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3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4
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에 있는 연못 같고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
5
머리는 갈멜 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
6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즐겁게 하는구나
7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송이 같구나
8
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 하였나니 네 유방은 포도송이 같고 네 콧김은 사과 냄새 같고
9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이 포도주는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내려서 자는 자의 입을 움직이게 하느니라

참된 사랑의 고백 7:10~13
10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11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12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 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
13
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우리의 문 앞에는 여러 가지 귀한 열매가 새 것, 묵은 것으로 마련되었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 둔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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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도우미
- 술람미(13절) 수넴 지방 출신을 말한다.
- 합환채(13절) 자귀나무. 임신의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창 30:14~16).

오늘의 말씀요약
왕은 술람미 여인의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녀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그는 여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그를 행복하게 하는지 고백하며 즐거워합니다. 여인은 남편의 사랑을 깨닫고,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 유숙하며 자신의 사랑을 주겠다고 합니다.

존귀한 아내 6:11~7:9
성도는 스스로의 어떠함이 아닌, 주님으로 인해 존귀한 존재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합니다(11~12절). 이전에는 남편이 아내의 몸으로 상징되는 ‘동산’으로 내려갔다면, 이제 아내가 남편의 몸으로 상징되는 ‘호두 동산’으로 내려갑니다. 이러한 여인의 적극적인 사랑 표현을 불편하게 여긴 사람들이 여인을 군영(마하나임)에서 춤추는 천박한 여인 취급을 하자, 남편은 아내의 존귀함을 노래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귀족이나 왕족이 아닌 농가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남편인 솔로몬왕으로 인해 ‘귀한 자의 딸’로 불리며, 그녀의 머리카락은 왕을 상징하는 자줏빛으로 묘사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해 자격 없는 죄인인 우리도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이자 의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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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과 남편의 시선은 어떻게 다른가요? 그리스도와 만나고 연합함으로 나의 어떤 것들이 달라졌나요?

참된 사랑의 고백 7:10~13
참된 사랑은 자발적인 순종을 가져옵니다. 여인은 세 번째로 사랑을 고백합니다(7:10). 여기서 ‘사모’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테슈카’는 ‘통치’라는 뜻을 지닙니다. 첫 번째 고백에서 ‘당신은 내 것’이라는 소유의 의미가 강했다면(2:16), 두 번째 고백에서는 ‘나는 당신의 것’이라는 헌신이 강조됩니다(6:3). 그런데 이번 고백에서는 소유적 측면에서 완전히 벗어나 ‘그의 통치가 내 위에 있기를 원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는 주님이 나의 헌신에 보상해 주지 않으실지라도, 혹은 믿음으로 살다가 고난을 당한다 해도 여전히 그분의 선한 통치를 간구하는 믿음의 단계로 발전한 것과 같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어떤 상황에서든 주님의 통치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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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라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주님을 향한 나의 고백을 돌아볼 때 어떤 면이 가장 강조되고 있나요?

오늘의 기도
비천한 저를, 왕이신 주님과 연합되게 하셔서 ‘존귀한 자’로 높여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요. 조롱받고 무시당하던 인생에 주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을 늘 기억하고 찬양하며, 저를 위해 각양 좋은 것을 예비해 두신 주님의 다스림에 저를 온전히 의탁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