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라

Feb 23, 2019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라

고난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고난이 없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가 되진 못한다. 고난은 우리의 삶의 가치를 떨어 뜨리는 것이 아니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더해준다. 동시에 고난은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풍성히 드러낸다. 고난이 낳는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일시적인 고난은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이다. 이는 고난이 현재적으로 잘 이해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영원한 눈으로 고난을 평가한다.

암은 다른 질병보다 치명적일 수 있지만 치명적이기 때문에 의사를 의지하기 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나님의 치유 능력이 절망적인 암에서 경험된다. 그러나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삶을 마감해야 하는 때도 있다. 이는 하나님의 일시적인 무능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른의도가 있는것이다. 하늘에서의 온전한 치유를 의미하며 이 땅에서의 삶은 단축되어도 그 삶의 가치는 단축되거나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암은 우리의 남은 삶을 더 의미있게 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수많은 암 생존자들은 자신의 암 진단이 자신에게 일어난 최악의 일 이자 최상의 일로 받아 들인다. 피터 센게는 시스템 과학자이며 MIT 경영대학 조교수다. 그가 세계은행에서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을 때, 한 직원이 불치병 진단을 받았다. 불과 몇 달밖에는 살지 못한다는 진단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기 시작했다. 치명적인 진단을 받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암이라는 현실 부정과 낙심과 절망의 구덩이에서 몸부림치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는 가운데 그의 삶의 태도가 달라졌다. 일의 우선순위가 달라진 것이다. 본질적이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중단했다. 중요한 일은 더욱 확실하게 중요해지고 중요하지 않은 일들은 단호하게 끊었다. 얼마 지난 후 친구의 권유로 다른 의사에게 진찰받을 기회를 가졌다. 새 의사를 통해 오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었다. 이 사실을 확인한 프레드는 소리 내어 울었다. 왜 울었을까? "내 삶이 예전 방식으로 되돌아갈까 봐 두려웠다"고 그는 말했다.

고난이 비극적인 것만은 아니다. 적어도 중년부터 인생은 본격적인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 것이다. 신체의 맥박 소리는 인생의 남은 시간을 카운트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여지없이 맥박은 시간을 카운트하고 있다.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는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자세이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자.  죽은 후에도 계속 살아있을 일들을 하자.

고난은 크고 작은 또는 간단한 수준에서 치명적인 수준까지의 고난이 있다. 죽을 뻔한 경험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고난이 될 것이다. 죽을 뻔한 절망적인 고난에 부딪쳤을 때 체험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만이 기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적은 계산을 거부한다. 아니 계산을 무력화시킨다. 빌립은 오병이어로 불가능하다는 계산적 결과를 말한다. 고난은 우리의 계산법을 바꾸어 버린다. 인간의 계산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산법을 깨닫게 하고 사용하게 한다. 이처럼 우리의 계산법이 달라지게 하는것이 절망으로 인한 기적이다.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은 다른 것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고난을 통해 알려 주신다. 하나님은 수고없는 명예박사 학위를 주시지 않는다. 고난의 학교와 실패의 학교와 고통의 학교를 통해 학위를 수여하신다. 어떤 경험은 다시 통과하기 싫은 것이지만 그 성적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고난은 삶을 단순화하게 한다. 불필요한 것을 정리하게 한다. 문득 너무 많은 불필요를 위해 인생을 낭비하는 것을 고난을 통해 알게 된다.

1956년 1월 30일 '타임지'표지는 에콰도르 쿠랄라이 강가에서 우아오라니 족의 창에 순교한 다섯명의 미국 선교사들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그들의 순교는 비극적이었으나 그것은 헛되지 않았다. 그들의 죽음이 많은 선교사들에게 도전을 주어 복음의 확장을 촉진 시켰다. 그 다섯 선교사 중의 하나인 짐 엘리엇이 쓴 일기의 서두는 당대에 가장 많이 인용된 문장들 중 하나다.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을 얻기 위해, 영원히 지킬 수 없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잃어 버릴 수 없는 예수를 얻기 위해 잃어 버릴 수 없는 영원한 나라를 얻기 위해, 결코 끝까지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하는 결단은 참으로 현명하고 멋진 일이다. 계산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심판 보좌 앞에 설 것이다. 우리가 죽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었는지 죄 가운데 있었는지 확인 될 것이다. 계산하는 날에 우리의 유일한 후회는 하나님께 올려 드리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일 것이다.

우리가 보존하려는 것은 다 잃는다. 하나님을 위해 잃은 것은 모두 영원토록 보존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만기가 있다. 천국에 투자하지 않은 것들은 가치를 잃는다. 천국에 투자하는 것에는 영원토록 복리가 붙는다. 다른 방식의 계산은 영원한 계산 착오가 될 것이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예수께 올인하는 삶이 영원히 지혜로운 투자가 된다. 내일이 있느냐 없느냐는 오늘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