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와 무지

Feb 10, 2019

무모와 무지

80명의 병사로 4천명을 포로로 잡은 대승리의 기적이 남북 전쟁 막바지인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일어났다. 신학교 교수였던 챔버린이 남북 전쟁 마지막 전투에서 이룬 기적같은 대승리였다. 지원도 끊기고 추가 병력 투입도 없는 전원 전사의 상황에서 전혀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300명의 병력이 80명만 남은 상황에서 부하의 보고는 더 절망스러웠다. 추가 지원도 없고 실탄도 다 떨어져 간다 는 것이었다. 할 수 있는것 이 아무것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투항하는 것 뿐이었다.

이대로 포기하고 살아남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할 수 없었다는 이유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 과 무능한 자의 궁색하고 비굴한 핑계이다. 비굴한 연명은 장렬한 죽음과 비교가 안 된다. 챔버린은 결심한다. '죽어도 결코 등에 총맞고 죽지 않으리라' 전사한 스파르타 병사들은 화살이 등에 꽂혀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죽음을 각오한 80명은 총을 무기로 삼고 칼을 무기로 삼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무기로 삼았다. 자신을 무기로 삼은 것은 자신의 능력의 전능성을 믿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전부를 드려 하나님께 쓰임받는 하나님의 무기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무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의 삶을 보라. 어떤 삶이었나?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으신 친히 자신을 제물로 드리신 진정한 헌신의 삶이었다.

예수님의 생애의 마지막 주간을 수난주간(passion week)이라고 부른다. passion은 열정이다. 수난주간을 passion week 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쩔 수없는 희생, 마지못한 희생이 아니라 죽음을 겁내지 않는 결단,그것이 진정한 열정이다. 십자가는 부분적인  희생이 아니다. 전부를 걸어야 한다. 죽음에 전부를 거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전부를 거는 것이다. 나를 위해 전부를 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전부를 거는 것이다.

인생은 하나님에게 전부를 걸지 않으면 다른 존재에게 전부를 걸게 된다. 무엇을 위해 전부를 거는가에 따라 후회하는 선택이 되고 후회없는 선택이 되며 무모한 결정이 되고 용의주도한 결정이 된다. 절대적인 것이 아닌 것은 반드시 무너진다. 그것에 인생을 걸면 그것과 함께 무너진다.  절대적인 것에 인생을 걸면 무너지지 않는 그것과 함께 무너지지 않는 삶을 산다. 인생은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실패가 실패가 아니다. 실패가 성공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나 적이 아니다. 실패는 성공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실패했을 때 상식적으로 확인할 것이 있다. 무엇에 전부를 걸었었나? 절대적인 것이 아닌 것에 전부를 거는 것은 실패에게 인생을 맡긴 것과 같다. 그러나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실패 앞에 섰을 때 비로서 자신을 알게 되고 선택의 기준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아닌 것에 전부를 걸고 사는 것처럼 무모하고 무지한 삶이 없다. 하나님께 전부를 거는 사람을 세상사람들이 '무모하다 어리석다' 라고 한다. 과연 그런가? 세상 것에 전부를 걸든지 하나님께 전부를 걸든지 둘 중에 하나다. 무모하고 무지한 인생이 있고 담대하고 용의주도하며  지혜로운 인생이 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지니라"(마16:24)는 말씀대로 한다면 어떤 각오가 필요 하게 되는가?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의 공통점은 자기 포기이다.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 내가 의지했던 것, 필요로 했던 것, 없어서는 안 되는 것 그리고 나 자신까지 포기해야 한다. 예수님께 영생에 대하여 물었던 부자 청년은 재산을 다 팔아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듣고 예수냐 재산이냐의 갈등 속에서 재산 때문에 영생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유턴했다.

많은 재산이 인생을 확실히 보장해주는가? 사망과 저주 멸망에서 절대적인 구원을 보장하는가? 예수님을 알게 되면서 발생하는 갈등이 세상을 포기해야하는 갈등이다. 예수를 선택하기 위해 세상을 포기하면 현실 삶을 어떻게 되는가? 나를 포기한 것과 세상을 포기했다는 것은 나의 삶의 주권이 주님께 이양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삶의 주권이 주님께 옮겨진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된 삶과 내가 나의 주인이 된 삶의 차이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나는 내 인생을 책임지지 못한다. 하나님만이 내 인생을 책임지고 보장할 수 있다.

책임지지 못할 인생을 사는 것만큼 무모한 것이 있는가? 아무 보장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 것만큼 무모한 것이 있겠는가? 예수 없는 인생이 그런 인생이다. 인류가 시작된 이래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었던 사람은 없다. 인류 역사 끝까지 마찬가지다. 하나님 이 외에 누구도, 어떤 것도 인생을 책임지지 못한다. 불가항력적인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이 근본적 무지이며 이 무지를 모르고 사는것이 무모한 인생이다. 아무런 대책없이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인생이 무지하고 무모한 인생이다. 예수께 맡긴 인생만이 지혜로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