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삭을 바쳐야 하는가?

Jan 27, 2019

왜 이삭을 바쳐야 하는가?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부르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1,2)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시험 중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 만큼 힘든 사건은 없을 것이다. 사실 이 시험은 하나님이 자신을 시험하신 것과 같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시험이 이삭 사건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대하는 아브라함의 심정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참담한 명령에는 가장 큰 하나님의 계시가 들어있는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의 역사적 기록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상식과 지식으로 성경을 자세히 조사하는 대신 그 성경으로 우리 자신을 자세히 조사하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 나의 기준으로 성경을 분석하는것이 아니라 성경의 기준으로 나의 생각과 태도, 꿈,욕구,두려움과 희망을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또는 현실에서 이와 비슷한 사건을대할 때 우리는 마치 하나님을 재판에 회부할 것 같은 자세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증인석에 앉혀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정확히 그런 이유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테스트하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기를 진짜 원해서 그렇게 명령하신 것이 절대 아니다. 단지 테스트일 뿐이다. 반대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자기 뜻대로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면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 테스트를 통과했다. 하나님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나의 관한 증거는 물론 하나님에 관한 증거도 얻지 못한다. 이삭사건은 우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대한 증거를 얻는 놀라운 기회이다. 하나님의 테스트가 있을떄 그 목적을 깨닫는 분별력이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믿음의 테스트는 증거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유대인들의 구전에 따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10번 테스트 하셨는데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은 최종 테스트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걸었는지 아닌지를 테스트하기 위해 그 마지막 시험을 구체적으로 계획하셨다. 최종 합격이냐 불합격이냐가 결정되는 중대한 시험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주된 이유로 우리를 테스트하신다. 첫째,믿음의 테스트가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입증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둘째, 믿음의 테스트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입증해 보이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성경은 말한다. (약1:2) 우리가 당하는 시련은 하나의 시험장이다. 시험은 우리가 한 학년을 졸업하고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는 길이다.

10년,20년을 믿었다고 말해도 10년,20년 동안의 체험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10년,20년전 그 때에 머물러 있는 믿음의 삶을 살아간다. 10년,20년을 진급한 사람이 있고 10년, 20년 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다. 그동안 하나님이 진급 시키려 하셨으나 그들은 시험을 거부했다. 시험을 거부했던 그들은 자신을 보려하지 않고 환경과 상대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하는 시행착오를 반복해왔다. 자신을 봤어야 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눕히고 칼을 높이 쳐들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걸었다는 사실을 아셨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친히 하나님이 공급자(provider)가 되심을 아브라함에게 입증해 주셨다. 만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걸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예비하심의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 이레,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계시할 수 있었다. 우리의 믿음을 보여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신다. 결국 하나님의 모든 공급을 잃어 버린 아담이 되는 것이다. 아담의 선악과 사건이 하나님을 불신함으로 모든 것을 상실한 최대 비극의 샘플이다.  

유대인 랍비의 전승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모리아 산에 예비하셨던 수양은 이삭을 대신할 목적으로 창조의 여섯째 날에 이미 창조되었고, 아브라함에게 필요한 순간이 오기까지 에덴 동산 생명나무 아래서 풀을 뜯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런 유대 전승을 입증할 만한 근거는 성경에 없다. 그러나 어찌됐든 그것은 진리에 대한 상징적인 묘사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곁에 갈 때까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하나님께서는 땅에 기초를 놓기 훨씬 전부터 미리 다 아시고 공급해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이 선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입증하실수 있는 기회만 드리면 된다. 하나님께 그런 기회를 드리는 것은 우리 삶에 시련이 닥칠 때 모든 것을 하나님께 걸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걷는 것을 의미한다.나의 전부를 걸때 나의 전부를 위해 준비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된다. 나의 전부를 내가 지킬 수 있는가? 가장 무모하고 무지한 인생이 어떤 인생인지 아는가? 자기 자신이 자신을 전혀 보장할 수 없고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는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