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는 축복의 땅이다

Nov 25, 2018

광야는  축복의 땅이다

하얀 백지 한 장에 붓끝으로 검은 점을 살짝 찍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무엇이 보입니까?"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십중팔구 검은 점이 보인다고 대답한다. 물론 틀린 대답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 검은 점은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하얀 부분이다. 어두운 면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훨씬 더 넓은 밝은 면을 보는 사람도 있다. 인생의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는 점 하나만 보느냐 넓은 종이 전체를 보느냐에 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여 주시고자 하는 것이냐에 포인트가 있다. 사람의 맹점이 있다. 봐야 할 것 보다 보고 싶은 것을 보려 한다는 것이다.

 

광야는 무슨 땅인가? 축복의 땅인가 저주의 땅인가? 축복의 땅이냐 저주의 땅이냐는 사람의 시각에 앞서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가 정확한 의미를 결정한다. 신 8장 16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이 광야에서 낮추시고 시험하신 이유는 복을 주시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셔서 박탈을 경험하게 하시고, 상심을 경험하게 하신다. 그 의도가 무엇인가? 생명을 빼앗고 죽음을 주시려는 것인가? 행복을 빼앗고 불행을 주시려는 것인가? 성경은 말한다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그러므로 광야의 삶은 저주가 아니고 축복이다.

 

광야의 삶이 축복인 이유는? 하나님이 광야의 길을 걷게 하셨기 때문이다. 광야는 끝없는 사막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다. 마실 물도 없는 곳이다. 그런데 그곳이 어떻게 축복인가?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신 8장 2절을 보면 알 수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누가 광야의 길을 걷게 하셨는가? 하나님이 걷게 하셨다. 이 한마디 때문에 광야는 축복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에게 복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평강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하나님의 목표는 멸망이 아니다. 심판이 아니다. 영생이다. 그러므로 광야 길을 걸으면서 불평하지 말자. 원망하지 말자. 오히려 감사하며 기대하자. 우리를 겸손하게 하신다. 신명기 8장 2절을 한 번 더 보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낮춘다는 것은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억지로 우리를 겸손하게 하신다. 그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광야로 인도하는 것이다. 사람은 고통가운데 집어넣으면 겸손해진다. 망하면 겸손해 진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교만을 꺾고, 겸손케 하시려고 광야 40년의 시련과 고난을 주신 것이다. 광야의 삶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기에 축복이다. 순종을 배우기 때문이다.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신 8:2 하반부>

 

시험하신 이유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어떠한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다시 말해 순종하는지 확인해 보시려고 시험하셨다는 것이다. 지금 힘든 광야 길을 걷고 있는가? 하나님이 시험하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순수하고 진실한지,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지 확인하고 싶으신 것이다. 시험은 합격해야 통과한다. 통과한 후에는 축복이 예비되어 있다. 그러므로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어도 하나님의 명령에 반항하지 말고 순종하자.

 

하나님만 바라보기 때문에 축복이다. 광야라는 곳은 하루라도 하나님을 안 보면 살 수 없는 곳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다.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 밤에는 혹독한 추위가 있다. 광야에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목축을 할 수도 없다. 지식이 많아도, 돈이 많아도, 권력이 많아도 아무 소용없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이 필요를 채워 주셨다. 조금이 아니었다. 풍족하게 넘치도록 주셨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사십 년 동안 그렇게 하셨다.

 

그런데 하루 분만 주시며 계속 매일같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수는 발칸 산맥의 장미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가장 춥고 어두운 시간인 자정에서 새벽 2시에 장미를 따는데 그 시간에 장미가 가장 향기로운 향을 내기 때문이다. 인생의 향기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극심한 고통 중에 만들어진다. 광야는 신앙의 종착역이 아니다. 광야는 믿음의 사람으로 훈련시키는 훈련장이다. 지금 광야에 서 있는가?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

 

우리를 깨뜨리시고 겸손하게 하신다. 그리고 낮아졌을 때 찾아오신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을 거룩한 땅으로 만들어 가시는 분이시다. 마침내 우리 앞에 놓여진 광야의 시련과 훈련이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에 이르는 통로가 되어지는 것이다. 광야 없이는 가나안도 없다. 광야를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어쩔 수 없어서 들어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가게 하신 것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싫어한다. 그 싫어하는 광야가 그토록 축복이 되는 줄 몰랐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황량한 광야조차 축복이 되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