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뿌리

Nov 18, 2018

감사의 뿌리

 

어떤 왕이 하루는 너무도 음식의 맛이 좋아서 주방장을 불렀다. "이 사람아 어떻게 하면 그렇게 솜씨가 좋은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어디서 이렇게 준비를 했지." "아닙니다. 오늘 가게 주인이 얼마나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제공해 주어서 음식이 맛이 있었습니다. 제가 잘한 것이 아닙니다." 왕은 가게 주인을 불렀다.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좋은 물건을 팔았느냐고 물었다. "저는 장사꾼이에요. 농사를 지은 것을 가져다가 파는 것이지 내 공로가 아니에요." 왕은 농부를 데려다가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농사를 잘 지었느냐고. 어디에 그런 기술이 있냐고. 어떻게 그렇게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농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잘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햇빛 주시고, 단비 주시고, 적당한 기후 주시고 내게 건강주시고, 만 가지 은혜를 주셔서 거둔 것입니다. 저는 농부입니다. 저는 아무 공로가 없습니다."

만일 모든 것이 내가 땀 흘린 수고의 대가라고만 여기는 보상적인 생활철학 속에 살아간다면 그 인생에는 감사가 있을 수 없다. 모든 일이 내가 수고해서 내가 거둔 결과라고 한다면 감사가 존재할 수 없다. 사실 이런 공로주의적인 세계관에 매여 사는 사람은 감사보다는 언제나 원망과 불평이 많게 된다. 이루어진 결과에 늘 만족함이 없고 수고에 비해 대가가 적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농부의 마음은 겸손했다. 땀 흘려 수고했지만 하늘이 돕지 않고서는 결코 결실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0에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지은 죄를 생각해 보면 벌써 심판 받아 마땅한 인생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신 것은 분에 넘치는 축복이요,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인 것이다. 이 고백은 사도 바울의 고백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 모든 구원받은 자들의 고백이다. 영원히 잊지 못할 감사의 고백인 것이다.    

이는 눈에 보이는 현실에 대한 욕구 충족으로 인한 감사가 아니다.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깨달음에서 오는 절대적인 감사이다. 오늘 신앙인의 진정한 감사는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할 사람들이 죄와 사망에서 건짐 받은 십자가의 은총이 감사의 출발점이다.  그것이 모든 감사의 뿌리이다. 일시적인 은혜가 아닌 영원한 은혜요 변질되는 은혜가 아닌 불변의 은혜요 상대적인 은혜가 아니요 절대적인 은혜의 특성은 바로 하나님의 특성이다. 이 특성이 감사의 뿌리가 지닌 의미이다. 아울러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있다.

첫번째, 감사는 행복을 낳는다. '감사는 행복해지는 연습이고, 불평은 불행해지는 연습이다'라는 말이 있다. 또한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왔다가 원망의 문으로 나간다'라는 말이 있다. 불평과 원망의 이유가 타당성이 있을리가 없지만 있다고 하자 그 결과는 무엇인가? 천만번 지당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오직 불행이다. 본인 뿐 아니라 듣는 사람도 불쾌하고 짜증난다. 백해무익한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다. 소위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사람일수록 이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는 아이로니가 있다.

두번째, 감사는 또 감사를 낳는다. 콩 심으면 콩나고 팥 심으면 팥난다. 인생은 농사이다. 심는대로 거두는 법칙이 창조법칙이다.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이나 심는대로 거둔다. 종류와 수량에 따라 정확한 수확이 그것을 증명한다. 감사를 심을수록 감사가 결실되고 더 많은 감사가 가능해진다. 먹을 것이 없는 빈 들판에서 주님은 작은 소년이 가져온 오병이어를 손에 드시고 축사 즉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그 결과 거기에 모인 오천 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처럼 내게 베푸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것을 또한 주님의 손에 올려드리며 그 자체를 영광과 특권으로 아는 자에게 더 크신 은총과 축복과 기적이 그 삶에 넘치게 된다.  

세번째, 감사는 기적을 낳는다. 바울과 실라 역시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저들은 찬송과 감사를 드렸다. 바로 그 때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감사 자체가 기적이다. 어떤 결과가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그 감사가 기적이다. 믿는 자의 감사는 특별한 수준에 있는 사람 또는 특별한 사건에 대하여 특정되어 있지 않다. 기본적인 자세이다. 믿는 자라고 하면 감사가 당연한 것이다. 믿음과 감사는 손바닥과 손등의 관계이다. 감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 당연한기적이다. 세상 사람이 감사할 수 없는 것을 감사하는 수준이 하나님의 사람의 수준이다.

네번째, 감사는 크고 작은 차이가 없고  특별한 것과 평범한 것의 차이가 없다. 감사의 본질은 같다. 같은 뿌리에서 싹이 나오고 성장하여 열매가 열렸을 때 열매의 크기에 관계없이 모든 열매의 DNA는 동일하다. 그 열매를 다시 심었을 때 정확히 동일한 성질의 열매가 열린다.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큰 문제나 작은 문제나 하나님의 존재는 동일하다. 인간적인 입장에서는 차이가 있으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차이가 없다. 지극히 작은 문제에 역사하시는 것과 세계적인 문제에 역사하시는 것에 차이가 없다. 따라서 우리의 감사도 어떤 상황에서도 동일한 가치성을 부여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차별이 없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도 차이나 차별이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