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굴하지 말라

Nov 11, 2018

비굴하지 말라

상대방보다 힘이 없거나 가진 것이 없어 열등한 입장에 있을 때 어떤 생각을 갖게 되는가? 생사여탈권을 가진 절대 권력자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게 될까? 세상에는 불공평하게도 있는 자가 있고 없는 자가 있다. 지배하는 자가 있고 지배당하는 자가 있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자가 있고 불리한 위치에 있는 자가 있다. 약육강식의 원리대로라고 하면 힘 없는자, 약한 자,불리한 자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변함없이 지금도 약한 자, 없는 자, 불리한 자들이 생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승승장구한다.하나님은 공평하시다. 상대적으로 불리하고 열악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불평하기 앞서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다. 불리한 자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반드시 배려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은혜는 강한 자가 따라오 지 못하는 축복과 승리를 누리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많은 경우 그의 자녀와 그의 백성을 승리보다 패배, 성공보다 실패, 행복보다 불행, 부요함보다 궁핍함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게 할 때가 있다. 처음부터 유리하고 형통한 상황 조건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이 강대국의 식민지가 되어 백성 전체가 고통당할 때가 있었다. 강대국의 유민정책에 의해 많은 백성이 강제 이주당하고 노예로 끌려가는 비극이 일어났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람들 중에 다니엘과 세 친구가 있었다.이방 나라에서의 첫 번째 시련은 신앙 문제였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만 포기하면 왕의 모든 혜택이 주어지고 노예가 아닌 귀족으로서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방신을 숭배하면 성공적인 미래가 보장되고 반대로 거부하면 성공은 고사하고 목숨을 포기해야 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유일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수하며 바벨론 신에 대한 경배를 거부하는 다니엘 세 친구가 왕 앞에 끌려왔다.

즉석에서 처형 당할 수도 있었지만 왕이 특별 예우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왕의 최종 허락을 받기위한 것이었다. 왕은 특혜를 베풀어 한번 더 기회를 주고자 했다. 왕이 자존심을 일시 유보하고 베푼 호의를 다니엘의 세 친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왕의 권위를 짓밟은 꼴이 되었다. 왕은 분노가 폭발했다.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변하고 명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일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왕이 그들을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었다. 윗사람의 얼굴빛이 싸늘하게 바뀐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간이 움츠러드는 무서운 경험이다. 절대 권력자의 얼굴빛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것이다. 마지막 기회를 줄 때까지도 살려주고 싶었다. 왕은 자존심을 짓밟는 세 친구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 배신감이 무섭고 비정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세상은 이토록 비정하다. 우리를 총애하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우리를 죽이려는 집행자가 될 수 있다. 분노한 왕은 극도로 잔인해졌다. 뜨거운 풀무불을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겁게 하라고 했다. 위협이나 고통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흔적도 없이 태워버리겠다는 것이다. 세상 권세의 잔인무도함을 보여준다. 느부갓네살은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잔인무도한 왕이었다. 오래전 그는 자신이 꾼 꿈을 가르쳐 주지도 않고 무슨 꿈을 꾸었는지 그 꿈의 해석은 무엇인지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고서 황당해 쩔쩔매는 학자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한 적이 있었다. 그토록 잔인한 느부갓네살은 처형을 즉시 진행시켰다. 때로 세상의 권세와 무력에 의해 하나님의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고통 당해야하는 때가 있다. 하나님이 무력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고난의 때보다 성공의 때에 신앙을 지키기가 더 힘든 법이다. 불구덩이에 들어간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그런 면에서 정말 존경스럽 다. 남들은 비참한 노예 생활을 할 때 바벨론 최고 관직에 있으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동안 영적으로 나태해지고 신앙이 식어졌을 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잔인한 형벌 앞에서 결코 굴복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모면하려 하면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딱 한 번만 고개를 숙이면 되는 것이다. 평생토록 하라는 것도 아니다. 왕의 체면을 생각해서 한 번만 하는척 하라는 것이다. 타협한다는 것은 숫자에 관계된 것이 아니다.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다. 횟수나 양을 얘기하지 말라. 한 번이냐 두 번이냐, 많으냐 적으냐, 크냐 작으냐의 문제가 아니다.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다. 단 한 번의 타협여부에 의해 평생의 성공이 무너지느냐 안무너지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과연 결정적인 순간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불구덩이 앞에서 믿음을 지킬 때 불구덩이에 던져지기 직전, 드라마 같은 기가막힌 반전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처음부터 버리기로 작정한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정말 낙심하게 된다. 그리고 괜히 고집부렸나 일말의 후회를 하게 된다. 그러나 정말 믿음으로 타협하지 않았으면 당당하고 비굴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에게 무릎꿇고 목숨 구걸하는 것만 비굴한 것이 아니다. 후회하는 것 자체가 비굴한 것이다. 모든 것을 잃어도 믿음을 지켰으면 그것으로 감사하라. 그리고 당당하라. 겸손해야 하지만 비굴하지는 말라. 목숨을 포함하여 전부를 포기하고 믿음을 지켰다면 당당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신앙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다.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어떤 불이익도 개의치 않는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것이 비굴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