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는 비를 맞아야 보인다

Nov 03, 2018

무지개는 비를 맞아야 보인다

겨울 없이 봄은 없다. 밤 없이 낮은 없고 땀 없이 달콤함은 없다. 고난 없는 영광은 없다. 무지개를 보려면 비를 맞아야만 한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가이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다. 십자가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기독교 자체뿐 아니라 구원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 십자가는 고난의 최고봉이요 종착역이다. 신학자 파넨버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나무 속에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것처럼 역사 속으로 구속사가 흐르고 있다"

흘러가는 역사 속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그것을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한다. 영적인 눈이 열려야 볼 수 있다. 파넨버그는 이어서 역사를 5C로 요약했다. Creation(창조), Covenant(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약), Christ(그리스도), Church(교회),Re-Creation(재창조),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셨다. 고난없이 영광이 있을 수없다.인생 자체가 필연적인 댓가 지불을 필요로 한다. 부활의 영광은 고난이라는 댓가를 지불한 결과이다.

무지개를 보려면 비를 맞아야 한다. 비 맞지 않고 보는 사진에 있는 무지개 역시 누군가의 비를 맞은 수고로 얻은 것이다.비를 맞는 댓가가 찬란한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몽골의 징기스칸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200만 정도 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가 500배가 넘는 땅을 점령하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대단한 역사이다.그렇게 된 데에는 그렇게 된 이유가 있다. 몽골 사람들은 여기 저기 퍼져 있었다. 그로인하여 그들은 정보를 정확하게 수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몽골 민족은 유목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말타기에 능숙하였다. 현대처럼 과학이 발달되지 않은 당시의 기동능력은 말이 유일했다. 말타기에 능숙한 그들은 유능한 기마대를 많이 보유할 수 있었다.

기마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몽골과 여타 지역의 나라를 오가며 정보를 제공했다. 통신 기술이 없던 시대였기 때문에 기마대가 활발하게 운영되는 몽골민족을 정보력에서부터 당할 수가 없었다. 정보력이 앞선 몽골과의 전쟁은 항상 밀릴 수밖에 없었다. 몽골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던 중요 요인 중에 하나가 정보력에 있었다. 그 때 징기스칸과 함께 생명을 걸고 싸웠던 이들을 '타르탄'이라고 부른다.  

 

징기스칸은 전쟁이 끝나고 황제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 타르탄들에게 6가지 상을 주었다.

1.당신들은 언제든지 누구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내 방에 들어 올 수 있다.

2.당신들은 전쟁이 끝나면 노획물을 제일 먼저 골라 가질 수 있다.   

3.당신들은 앞으로 세금에서 면제된다.

4.당신들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어도 9번까지 용서받는다.

5.당신들은 이 나라 안에서는 가지고 싶은 땅을 가질 수 있다.

6.당신들은 이런 권리를 4대까지 유효하다.

그래서 타르탄이 죽어도 그 후손들은 그 권리를 누리며 살았다. 타르탄의 후손은 타르탄 조상 덕분에 6가지 복을 자손대대로 전수 받아 누리며 살았다.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타르탄들이다. 주님을 위하여 타르탄처럼 살면 타르탄과 같은 보상을 받을 것이다. 비를 맞지 않고 무지개를 보려는 허황된 가치관이 세상을 타락하게 만드는 핵심 원인이 되고 있다. 일찌기 본 회퍼는 기독교의 적은 마귀가 아니라 싸구려 은혜, 싸구려 구원이라고 질타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싼 희생으로 주어진 구원의 은혜를 너무 값싸게 여기는 것이 기독교를 타락시키는 독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사람이 물에 빠져서 휩쓸려 떠내려 가고 있었다. 한 사람이 위험을 무릎쓰고 생명을 걸고 뛰어들어 드디어 건져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우뢰와 같은 박수를 치며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놀라서 물었다. "어떻게 당신은 그렇게 용감하게 급살스러운 물속으로 뛰어 들어 갔습니까?" 그 사람이 말했다. "저 사람이 내게 갚을 돈이 많아요" 세상은 무조건적인 희생이 없다. 조건부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희생이다. 그 희생의 댓가로 인하여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것이 우리가 받은 구원이다. 이 사실을 안다고 하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옥합을 깨뜨려 드렸던 여인의 감사의 눈물이 우리의 눈에서 비처럼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