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을 만난 태도

Aug 12, 2018

환란을 만난 태도

환난을 만났을 때의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환난을 만났을 때 반항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반항하는 태도의 이유는 무엇인가? 억울한 것이다. 환난 당할 만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억울한 것만큼 속상하고 화가 나는 것도 없다. 환난은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억울함에 감정이 격해지는 것이다. 문제에 대한 반응이 감정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환난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반항이 사람 향해 나타나면 원망 혹은 보복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해 나타나면 하나님과 적대관계가 되는 것이 더욱 위험하다.

하나님과의 적대관계는 영적 적대관계를 말한다. 한 때는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며 많은사람의 칭찬을 듣던 사람이 이유없는 환난을 당하면서 타락하여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대항하며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교회에 어려움을 주는 적그리스도적인 역할을 하는 불행한 경우가 있다. 과연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하는 그리스도인이었느냐를 반문하게 된다. 모르기는 몰라도 처음부터 하나님의 영의 사람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많다.   

환난을 만났을 때 반항하는 대신 낙심하고 좌절하는 태도가 있다. 반항하는 태도가 주변에게 공격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낙심과 좌절의 태도는 반대로 주변으로부터 멀어지고 스스로 소외되는 반응으로 나타난다. 스스로 소외되는 반응은 공동체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극적이며 냉소적인 자세를 갖게 되고 비협조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좋은 상황에서는 믿음이 좋은 것 같았으나 어려운 상황에서는 낙심과 좌절을 이기지 못하고 포기한 자세로 일관한다면 좋은 상황에서의 태도는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었다는 증거가 된다.

낙심과 좌절은 비신앙적 불신앙적 자세이다. 믿음에서는 있을 수 없는 태도다. 믿음의 상태는 문제없는 상황에서가 아니라 문제 있는 상황에서 확실히 입증된다. 믿음은 오히려 어려울 때 고난 가운데서 빛이 난다. 별이 영롱하게 빛나는 시간은 낮이 아니라 캄캄한 밤이다.별처럼 빛나는 믿음은 환난 가운데 있을 때 확실히 증명된다. 참된 믿음은 문제가 많을수록 승리의 기회가 많아진다. 문제로 인하여 믿음이 확인되는 것이다. 낙심과 좌절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한다. 나중에는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깊이까지 내려가게 된다.

낙심과 좌절은 이미 패배가 결정된 것과 같다. 신속히 빠져 나오지 않는다면 환난은 끝나지 않고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을 것 이기 때문이다. 낙심과 좌절 역시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그 상태에서 속히 빠져 나와야 하는 이유가 영적 함정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낙심과 좌절은 이기려고 애쓰다가 불가항력적으로 빠진 함정이 아니다. 물론 이기려고 노력하다 나중에 좌절하는 경우도 있지만 너무 쉽게 처음부터 낙심하고 좌절하는 것이 흔한 경우이다. 문제는 그 한번이 아니라 이미 이 사람은 낙심과 좌절이 습관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난생 처음 낙심하고 좌절한 것이 아니다. 지난 날 많은 문제를 만나면서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자포자기하는 태도가 있다. 낙심과 좌절이 반복되고 계속되다보면 결국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는 결과에 도달하게 되지만 아예 처음부터 자포자기하는 자세가 있다. 어찌보면 반항의 일종일 수도 있는 이런 반응은 지금까지 주변으로부터 인정받기 보다 항상 책망과 비판과 정죄로 학대받은 사람의 반응이다. 자포자기는 자폭테러와 같은 것이다. 자폭은 자신과 주변을 파괴하는 것이다.  자폭하여 자신에게 상처를 준 주변에게 보복하려는 심리가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다. 사회 문제가 갖고 있는 가장 많은 현상이 자포자기 현상이다.

인생을 포기할 정도의 심각한 환난을 만난 사람은 수없이 많다. 동시에 상상 못할 환난을 상상 못할 승리로 바꾼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상황이나 환경적 조건에 인생의 승부가 달린 것이 아니다.믿음의 위대함은 평탄한 상황이 아니라 누가봐도 어려운 절망적 상황에서 나타난다.믿음이 필요하다면 어떤 상황에서라고 생각하는가? 분명히 절망적인 상황에서다. 절망이 믿음의 위력을 보여줄 수있는 결정적 기회가 된다.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가? 하나님이 맞다면 추호도 걱정할 필요도 겁먹을 필요도 없다. 온 세계를 하루 아침에 있게도 할수 있고 없게도 할 수 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벧전4: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