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 사탄의 뜻

Jun 17, 2018

하나님의 뜻, 사탄의 뜻

우리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기본적으로 담대하게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기도할 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일찌기 모든 제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이중적인 현상이다. 이중적 현상이란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가져라, 담대하라, 견고히 서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기도하라, 인내하라, 결코  포기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반면에 자기 십자가를 져라, 하나님께 순복하 고 복종하라,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을 바쳐라, 살고자 하면 죽어라, 높아지고자 하면 낮아져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너무나 모순적이 라고 느껴지지 않는가? 우리는 이 두 가지 지침 사이에서 혼동하거나 갈등하기 쉽다. 과연 적절한 기도의 자세가  무엇일까? 원하는 것을 담대하게 구했고 때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라고 조심스럽게 순복하는 자세로 기도하면서 이 두 가지 태도가 완전히 배타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 상반된 지침을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 그리고 두 지침의 차이를 어떻게 식별해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보낸 마지막 밤에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일관하셨다. 그뿐 아니라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의지대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고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면 아버지께서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은 마지막 밤 대화의 전부였다. 다른 복음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인쇄가 잘못 된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날 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섬뜩한 전쟁을 치르셨다. 기도하라고 하셨지만 제자들은 잠을 이기지 못 했다. 단 둘만 남았다. 아들과 아버지 - 예수님과 하나님. 예수님은 다른길이 있는지, 고려할 만한 대안이 있는지 아버지께 여쭈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제자들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그하라고 촉구하셨던 예수님은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방금 전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던 대로, 자기가 무엇을 구하든지 아버지께서 주셔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실 수도 있었지 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사탄이 접근하는 것을 보셨지만(제자들에게 이미 주의하라고 경고하신바가 있다.) 격퇴하지 않으셨다. 이사야의 예언이(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무슨 의미인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 과정에서 사탄이 어떤 일을 할지 잘 알고 계셨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께서 그 일들을 통해 어떤일을 하시려는지 이미 알고 계셨다. 예수께서는 가장 격렬한 전쟁의 한 가운데 계셨지만 아버지의 뜻에 순복하셨다. 천군 천사를 휘하에 거느린 하나님의 아들이 사탄의  계획에 대항하여 공격적으로 기도하지 않았던 까닭이 무엇인가? 사탄이 알지 못하는 심오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독재자를 한 방에 무너뜨릴 은밀하고 가공할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획을 따를 때 원수를 직접 공격할 때보다 더 완전하고 지속적인 전리품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사탄의 뜻과 하나님의 뜻의 차이를 확실하게 구별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밤, 우리가 겟세마네 동산에 있었다면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이 메시아는 3년 동안 온갖 귀신을 내쫓고, 폭풍을 잠잠케 하셨고, 불치병을 고치셨고, 죽은자를 살리셨다. 하늘과 땅과 바다를 지배하시는 전능자이심을 증명하셨다. 우주를 하루아침에 뒤집을 수 있는 전능자께서 갑자기 싸우기를 포기하신 게 아닌 가? 아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탄의 뜻에 굴복하셨을 뿐이다. 우리의 최대 관심은 싸움에서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느냐 에 맞추어져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사탄의 뜻을 식별하는 것이다. 그날 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과 씨름하셨다. 예수께서 는 그 순간이 아버지의 뜻과 사탄의 계획이 한 점에 모여 있는 경우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자신의 십자가 희생으로 사탄이 어떻게 패배할지, 외관상 사탄의 승리처럼 보이는것들이 어떻게 치명적인 패배로 작용할지 잘 아셨다. 예수께서는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들을 알고 계셨다. 겟게마네 동산 사건에서 우리가 제기해야 할 결정적인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그런것들을 분별하느냐이다. 어둠의 나라에 대항하여 공격적인 기도를 드릴 때와 어둠의 나라가  하나님의 의도에 직접 기여할 때를 어떻게 구별할까? 불의에 희생된 성도들의 겸허한 반응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실증하려고 하실 때, 우리가 동일한 불의에 대해 공격적으로 기도하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께서 질병을 통해 어떤 가정을 하나로 묶으시고 가족의 회개를 유도하려 하시는데 우리가 그 질병을 제거해달라고 기도하면 어떻게 될까? 순종과 타협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악이 공격해올 때 언제 거칠게 대항할 것인 지, 언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희생할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 우리 삶에 악을 허락하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악에 도전하지도 않은 채 악과 어울려 살기를 바라지 않으신다. 우리는 예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에 순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그 뜻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악의 활동을 허락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만 악이 제갈길을 가도록 둘뿐, 그렇지 않은 경우는 강력하게 공격적으로 대항해야 한다. 순복이든 대항이든 하나님의 뜻에 의해 행동이 결정되는 것이다. 올바른 순복은 무지나 체념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원수가 멸망하는 것을 보고야 말겠다는 단호한 결단에서 나온다. 악에 대한 공격적인 기도가 우리의 삶을 역경과 고통으로부터 면제해 주는것은 아니다. 승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위해서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에게만 약속되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