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소망이 되는 교회

May 26, 2018

세상의 소망이 되는  교회

세상이 교회를 비난하는 것은 교회가 교회이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교회다운 교회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교회가 세상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세상은 매우 이기적이어서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요구할 뿐이다. 가난한 이들을 돕고, 문화센터를 열고, 선행을 하고, 교회 주차장을 개방하고, 사회봉사를 하고, 세상이 원하는 대로 교회가 모두 한다고 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 교회는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쓴 약을 주어야 한다. 저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세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변화된다는 것을 과거 2000년 인류의 역사가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특히 교회 지도자들이 말씀 중심으로 살고,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회개하고 헌신하고 희생하며, 안으로부터 개혁을 실천해 갈 때, 우리는 세상에 희망이 될 수 있고, 세상이 기대하는 교회가 될 수 있다. 위기는 기회의 다른 말이다. 교회는 예수 안에 있는 한 희망이 있다. 아인슈타인이 말년에 이런 고백을 했다. ‘나는 젊었을 때 교회를 경멸하고 무시했었다. 그러나 내 조국이 어려워졌을 때 교회는 우리 유대민족의 유일한 희망이었고 소망이었고 안식처였다. 내 나이 먹어 석양녘에 교회 외에 내 영혼의 위로를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곳도 찾지 못했다. 나는 이제 그리스도와 교회로 돌아온다.’ 우리에게 교회는 어떤 곳인가? 

성경을 보면 크게 두 종류의 교회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 칭찬받은 교회와 책망 받은 교회가 있다. 에베소 교회는 첫사랑을 잃어버린 변질된 교회였고, 버가모 교회는 발람의 교훈에 넘어가 사단이 판치는 교회였고, 사데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었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였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한 병든 교회였다. 이처럼 하나님이 세우신 신적 기관인 교회도 다 거룩하고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한때 교회는 중세를 어둠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믿음의 역사로 소문난 교회였다. 서머나 교회는 환란과 궁핍 속에서도 실상은 부요한 교회였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키며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교회였다. 안디옥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였다.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교회와 비교할 때 역사도 짧고 교인 수도 적았지만 본이 되는 교회였다. 안디옥 교회는 무명의 성도들이 세웠지만,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회가 되었다. 안디옥교회는 우리가 꿈꾸는 교회이다. 

<다양한 좋은 일꾼들이 있었다> 안디옥 교회는 흑인이나 유대인을 구별하지 않는, 인종을 초월한 교회였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를 구별하지 않는, 빈부를 초월한 교회였다. 천한 사람이나 귀족을 구별하지 않는, 귀천을 초월한 교회였다(행 13:1).  이처럼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교회 안에 지방색이 있으면 안 된다. 텃세가 있으면 안 된다. 있다면 예수 색깔만 있어야 한다. 섬김만 있어야 한다. 이런 모습이 우리가 꿈꾸는 교회다. 

<예배가 살아있었다> 안디옥 교회는 오직 주를 섬기는 교회였다(행 11:2).  섬긴다는 것은 예배를 말한다. 영어성경을 보면 'worshiping'이라고 번역했다. 예배를 드리며 금식할 때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성령께서 선교의 비전을 주셨다. 하나님은 예배를 기뻐하신다.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예배 를 통해 우리를 축복하신다. 우리를 치료하시고,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고, 소망을 주신다. 그러므로 예배가 축복이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다> 안디옥 교회의 가장 큰 원동력은 금식과 기도였다(행 11:2-3). 무슨 일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금식하고 기도했다. 교회는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서 좋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성령께서 시키시는 일을 해야 한다.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크게 부흥했지만 순종하지 않았다. 흩어지지 않았다.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러자 핍박을 통해 하나님께서 강제로 흩어지게 하신다. 흩어진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여 안디옥에도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달랐다.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 성령이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하시자, 안디옥 교회는 금식하고 기도하며 두 사람에게 안수했고 선교사로 파송한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한 것이다.

<선교하는 교회였다> 사도행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장부터 12장까지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유대인 사역이었고, 13장부터 28장까지는 바울을 중심으로 한 이방인 사역이었다. 다시 말해 1장부터 12장까지는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에 일어난 역사라면, 13장부터는 사도 바울의 네 차례 걸친 전도 여행으로, 기독교가 세계화가 되는 사역이다. 그 중심에 안디옥 교회가 있었다.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래서 음성을 듣자마자 순종했다. 바나바와 사울을 안수하여 보낸다. 이처럼 보내는 것도 선교이고 가는 것도 선교이다. 선교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다. 최고의 명령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다. 한가지를 선택하라. 가든지! 보내든지! 

안디옥 교회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가 되면 세상이 기대하는 교회가 될 것을 확신한다. 우리가 꿈꾸는 교회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자. 그래서 세상이 교회를 향해 ‘그래도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