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나간 20초

Apr 22, 2018

정신 나간 20초

"때로는 정신 나간 용기 20초만 있으면 돼!"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위험한 결정을 내리면서 한 말이다. 명대사는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이 우리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정신 나간 20초! 그것만 있으면 된다. 베드로가 배에서 갈릴리 바다 한 가운데로 뛰어내리는 데 걸린 시간,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돌격하는 데 걸린 시간,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가는 데 걸린 시간이 다 그 정신나간 용기 20초와 관계가 있다.

역사는 순간 급회전한다. 그 순간이란 20초쯤 되는 정신 나간 용기가 필요한 결정적인 결단을 의미한다. 믿음으로 한 발짝 뛰어 밧줄을 붙잡고 벼랑을 오르든지 아니면 밑으로 뛰어내리는 용기를 가지면 그 용기가 우리의 삶을 영원히 변화시킬 것이다. 정신 나간 20초! 어느 날 주님이 나타나셔서 모든 것을 버리고 좇으라고 하실 때 정신 나간 20초만 있으면 된다.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인가? 말도 안 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인가? 정신 나간 20초만 있으면 된다.

정신 나간 20초는 정상적인 사람이 보기에는 분명 미친 짓이다. 소년 다윗이 물매돌을 들고 골리앗을 향해 달려갈 때 그것은 분명 정신 나간 행동이었다. 겁에 질려 숨어있는 사울왕과 군사들은 제 정신을 가지고 있지만 승리와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다윗은 정신 나간 것 같지만 승리의 기회를 가진 사람이다. 정신 나간 당신의 행동을 미친 짓이라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비웃는다고 놀라지 말라. 오히려 감사하라. 사람들이 비난하지 않으면 오히려 걱정스런 일이다. 정신 나간 짓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절벽을 올라갈 때 사람들은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은 무엇인가? 평범한 것들일 것이다. 평범한 것이 당신의 목표인가? 나의 경우는 아니다. 나를 미치광이라고 불러도 좋다. 평범한 인생으로 끝나고 싶지 않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갈릴리 바다에 뛰어내릴 때 다른 제자들은 다들 미쳤다고 소리 질렀을 것이다. 죽었다고 비관적인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베드로를 향해 소리지른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물 위를 걸었다.

기적의 구경꾼이 된사람이 있고 기적의 주인공이 된 사람이 있다. 물 위를 걷는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안락한 배 안에 앉아 있다. 절벽을 오르는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들 역시 절벽 아래 서서 그렇게 말한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도전했을 때 다윗의 형들은 그를 비난했다. 그러나 그의 형들이 수수방관하는 동안 다윗은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떠 올랐다. 세리장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갔을 때 군중들은 분명히 그를 손가락질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가서 함께 식사하는 영예를 누리지 못했다.

예수님이 우리를 안전하게 해주려고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다. 편안하고 즐겁게 만들어 주려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니다. 십자가 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안락한 삶의 계획을 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담대한 계획을 짜는 것이다. 우리가 결정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믿음인가 두려움인가? 두려움이면 안일한 결정을 할 것이며 믿음이면 담대한 결정을 할 것이다. 영적 배짱이 있어야 한다. 배짱이 없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의미이다. 경기를 지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고 경기를   이기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지지 않으려는 사람은 절대 이길 수 없다.

벼랑을 오르는 사람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느니 차라리 벼랑에서 뛰어 내리는 쪽을 택한다. 기회를 놓치느니 차라리 실수 하는 편을 택한다. 벼랑을 오르는 사람은 믿음으로 내딛는 한 발짝이 개인의 궁극적인 종착지일 뿐 아니라 역사의 진로를 바꾸는 티핑 포인트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요나단이 담대하게 행동했을 때 정확히 그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일하시는 데 필요했던 것은 요나단의 한 가지 결심뿐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데 필요한 것도 우리의 한 가지 결심뿐이다.

"더 이상 인생의 목적이 안전하게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살지 마십시오. 크신 하나님께 맞는 목표를 세우십시오. 하나님께서 개입해주시지 않으면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꿈을 좇으십시오. 과거를 되풀이하지 말고 미래를 만들어 나가십시오. 안전하게 살기를 중단하고 위험을 감수하십시오. 오늘이 인생의 첫날이자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십시오. 죄악의 다리들을 불태우십시오. 새로운 시도에 불을 지피십시오. 두려움 가운데 결정하지 마십시오. 아무것도 감추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거십시오."

공격형이 있고 수비형이 있다. 수비형은 위험 부담이 적은 방식이라고 생각되고 공격형은 위험 부담이 많다고 생각하기 쉽다. 분명한 사실은 수비형은 절대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치열한 전쟁터 한가운데서 태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편리하게 의도적으로 망각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선과 악의 우주적 차원의 전쟁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이 마치 평화의 시기인 것처럼 살아간다. 2천 년 전 십자가로 사단의 권세를 무력화 시키시고 우리로 하여금 공격적인 자세로 영적 전쟁을 주도하도록 명령하셨다. 죽음이 두려운가? 어차피 죽는다. 목숨을 구걸하다 죽는 사람이 있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