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합이 깨어지는 날

Apr 15, 2018

옥합이 깨어지는 날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세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인이 한 여자가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 알았으리라 하거늘(눅7:36-39) 바리새인의 초청으로 만찬에 참석한 예수님에게 어느 여인이 향유를 부은 사건에 관한 성경 내용이다.

바리새인이라고 하면 율법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다. 의인이라는 자긍심이 대단한 사람들로서 소위 죄인이라 불리는 부류와는 상종을 안하는 종교 귀족이다. 그 자리에 초청 대상이 아닌 예상 밖의 인물이 등장했다. 바리새인들이 경멸하는 죄인이 나타났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칠 때도 바리새인은 율법으로 예수님을 공격했고  죄인인 여자를 향해 돌을 던졌다. 오늘도 그런 상황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 여자는 향유 옥합을 가지고 돌을 맞을지도 모르는 자리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드렸다. 바리새인은 발 씻을 물도 내놓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향유를 붓고 눈물로 발을 씻겨 드렸다.

향유 옥합은 평생을 위한 결혼 준비물이었다. 그 옥합에는 향유가 아니라 자신의 전부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과거가 담겨 있고 미래가 담겨있다. 창녀로 살아온 삶의 전부가 담겨 있는 향유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아낌없이 예수님께 부어 드렸다. 이제는 더 이상 향유의 향기로 죄의 악취를 가릴 수 없고, 타락한 삶을 미화할 수 없다. 그녀는 죄의 어두운 그늘에서 나와 빛 가운데로 들어갔다.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해야 할 때가 온다. 수치스런 죄의 진상을 밝혀야 할 때가 온다. 하나님의 은혜에 온전히 빠져야 할 때가 온다. 옥합을 깨뜨렸을 때가 그녀에게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옥합이 깨어지지 않으면 향유는 밖으로 나올 수 없다. 밖으로 나오지 않은 향유는 향유 역할을 할 수 없다. 당시의 향유 옥합은 오늘 날 처럼 다시 사용할 수있는 구조로 되어 있지 않았다. 완전히 깨뜨려야 했다. 바리새인 앞에서 옥합을 깨뜨리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다. 자기의로 완벽하게 죄를 포장하고 있는 바리새인 앞에서 죄많은 여자가 죄를 담고 있던 자기를 완전히 깨뜨리는 모습을 목격하게 하신 것이다. 옥합은 향유를  보관하기 위해 필요하고 향유를 사용하기 위해 깨져야 한다. 구원은 완벽하게 죄를 가려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를 완벽하게 쏟아야 얻어진다.

구원은 자기의 몇%, 하나님의 은혜 몇%의 복합 음료수가 아니다. 100% 천연 쥬스이다. 100% 하나님의 은혜다. 100%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구원은 나의 죄를 100% 쏟아놔야 한다. 믿음은 100% 아니면 0%이다. 믿음과 자기의의 복합물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면서도 우리의 공로를 부분적으로나마 인정받고 싶어한다. 1%만이라도 인정받고자 한다면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받게 되는 참된 구원을 놓치게 된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건다는 것은 철두철미한 회개를 말한다.하나님께 모든 것을 건다는 것은 먼저 우리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의 죄부터 다 내놓아야 한다.

미지근한 죄 고백은 그리스도를 향한 미지근한 사랑을 낳는다.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은혜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그것은 죄가 없으신 분의 십자가 희생을 더럽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여인처럼 용기를 내서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이 꽉찬 방으로 들어가서 전혀 부끄로워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낱낱이 자백하고 재산 목록 1호인 향유 옥합을 깨뜨려 인생의 주인이자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기름을 부으면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나는 정답을 알고 정확히 알고 있다. 이 땅에는 뜨거운 부흥이 일어날 것이고 하늘에서는 성대한 잔치가 열릴 것이다.

복음서의 저자 두 명이 그녀가 바친 향유의 실제 가격을 밝힐 정도로 그 사건을 주목했다는 것은 당시에 향유가 매우 비쌌다는것을 입증한다. 그 향유의 가치는 당시 노동자 연봉에 해당하는 액수였다.거의 모든 사람에게 돈이 향유 옥합이다. 성령께서 그 모든 것을 바치도록 마음에 촉구하실때 옥합을 깨뜨려 드릴 수 있는가? 돈 문제가 나오면 사람들은 어느 정도 방어적 자세를 취한다. 예수님은 돈 문제에 직설적으로 말 씀하셨다. 우리가 돈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것을 기준으로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께 순종하는지를 측정할 수 있다. 믿음과 희생도 마찬가지다. 돈은 순종과 희생을 재는 유일한 척도일 뿐만 아니라 가장 정확한 척도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수입의 1%를 드리면서 100% 헌신한다고 진실로 말할 수 있을까?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서 "나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합니다"라고 진실로 말할 수 있을까? 첫열매가 아니라 남은 찌꺼기를 드리면서 다른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있다고 진실로 말할 수 있을까? 향유 옥합은 우리의 구원을 입증하고 우리의 우선순위를 말해주고 우리가 누구를 따르는 사람인지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식이다. 향유 옥합을 깨뜨린 순간부터 비로서 천국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고 이 땅의 부흥을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