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Oasis)

Apr 07, 2018

오아시스(Oasis)

사막에는 사람이 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사막에도 사람이 산다. 사막이라도 샘물이 어느 곳엔가는 있기 때문이다. 샘물이 하나도 없는 사막은 없다. 오아시스가 없는 사막은 없다. 사막이 샘이 있기 때문에 신비로움을 갖는다. 샘이 없다면 죽음의 땅, 삭막한 절망의 땅이다. 다윗이 숨어있던 엔게디 광야는 끝없는 사막이다. 풀 한 포기 없는 바위 산이다.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인 까닭에 사람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엔게디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누런 흙먼지가 날으는 광야 가운데 엔게디 근방에만 푸른 빛을 볼 수 있다. 현재는 농장이 조성되어 많은 종려 나무가 재배되어 열매를 수확하여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린다.

가나안 땅을 지칭할 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했으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오아시스의 샘을 이용하여 황무지를 개간했기 때문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된 것이다. 특히 과일 농사가 성공하는 이유가 있다. 사막 기후는 일년 내내 따가운 햇빛이 비추어 일조량이 풍부하여 맛이 좋은 과일을 생산할 수 있다. 농업용수만 해결된다면 최고의 환경인 것이다. 더구나 생산 원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기본 투자비가 적은 장점이 있다. 사막이기 때문에 땅값이 아주 저렴하여 헐값 수준이다.

발상 전환을 하면 악조건이 호조건이 된다. 사람이 보기에는 절망적이고 쓸모없는 환경이 오히려 엄청난 축복적인 환경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인도하심은 오묘하다. 사람의 발 길이 닿을 일이 없었던 사막이 관광 코스가 되었고 기적의 상징이 되었다. 죽음의 사막이 생명력이 넘치는 낙원이 된 것이다. 엔게디의 샘이 사막을 낙원으로 변화 시키는 핵심 역할을 한 것이다. 샘 하나가 그 땅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낙원이 되게 하여 사람들이 몰려오게 한 것이다.

대륙 가운데 가장 넓은 사막을 갖고 있는 대륙이 아프리카이다. 그런데 그 사막이 계속 확장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 사하라 사막이외의 지역은 비옥한 토지임에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또한 안타까운 일이다. 환경적 오아시스의 존재도 중요하지만 인간적 오아시스가 더 중요하다. 오아시스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아프리카에서 비교적 발전된 나라가 있다. 나이지리아이다. 나이지리아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 있다. 위인으로 추앙받는 "사무엘 에드자이 크라우드"이다.

19세기 해적들은 배를 몰고 아프리카로 와서 흑인들을 마구잡아 배에 실어 날랐다. 최대 노예시장이 서인도에 있었다. 그 곳에서 세계 곳곳으로 팔려 나갔다. 한 번은 흑인들을 가득 실은 배가 서인도로 항해 중에 있었다. 이를 발견한 영국 해군이 해적들을 모조리 잡았다. 그 가운데 크라우드가 있었다. 당시 14살이었다. 생명은 건졌지만 집에 돌아갈 길이 막막했다. 거지생활을 하면서도 그가 타락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않은 것은 믿음 때문이었다. 절치부심 기도했다. 사막에서 샘을 찾듯이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찾던 그는 뜻밖에 선교사를 만나게 된다. 선교사는 그의 착실함과 믿음을 보고 기독교 학교에 입학 시켜 주었다. 열심히 공부하였다. 영국 선교사는 너무나 성실한 것을 보고 영국으로 유학을 보내주었다.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좋은 일자리가 생겼으나 그는 기도했다."하나님! 나는 노예로 끌려가서 평생 종살이 할 운명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 나를 건져주셨습니다. 그리고 유학까지 시켜 주셨습니다. 나는 이 곳에서 편안하게 살면 안 되는 것을 압니다. 나이지리아로 가서 나이지리아 동족을 위해 생명을 바쳐 일하겠습니다."      

크라우드는 나이지리아로 돌아왔다. 당시 아프리카는 영국이 지배하고 있었다. 영국에서 공부한 크라우드는 영국을 잘 알았다. 영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앞장섰다. 수준 높은 나라를 만드는데 전심전력했다. 그 결과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에서 최고의 나라가 되었다. 나이지리아 국민들은 그에게 별명을 붙여 주었다. "나이지리아의 사도" 사막같은 나이지리아에 살아있는 오아시스가 되어 낙원을 만든 것이다. 환경이 오아시스가 아니라 사람이 오아시스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 되어야 하는 사명과 책임이 있다. 크라우드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아프리카로 돌아온 것처럼 빚진자된 우리는 일신의 안락함에 도취 되지 말고 세상에 들어가서 생수가 솟아나는 샘이 되어야 한다. 세상은 이미 생명을 상실한 사막이다. 한 사람도 예외없이 사망이 기다리는 목마른 영혼들이다. 물이 떨어져 죽어가는 사막의 방황자이다. 하나님이 천국에서 부르셔도 지체하며 시급히 해야할 일이 있다. 이 땅에 오아시스가 되어야 한다. 한 사람 이라도 더 물을 나눠 주어야 한다. 목말라 죽어가는 영혼들의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