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군 전사 작전(全軍 全死 作戰)

Feb 24, 2018

전군  전사 작전(全軍  全死 作戰)

동계 올리픽 종목 중에 '바이애슬론'이란 스포츠가 있다. 사격총을 메고 눈 덮힌 산악을 스키와 폴을 이용해 이동하면서 지정된 장소에서 사격시합을 하는 경기다. 출발선부터 결승지점까지 걸린 시간과 사격의 정확성을 가려 최종 순위를 결정하는 경기다. 바이애슬론은 과거 북유럽 군인들이 '군사정찰(Military patrol)'을 위해 실시하던 운동 경기 중의 하나였다. 겨울이 길고 혹독하며 눈이 많이 내리는 북유럽 지역에선 스키를 타면서 사격을 하는 전투 능력이 매우 중요했다. 이 바이애슬론의 실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전쟁이 핀란드와 소련의 '겨울전쟁'이다.

12세기 초부터 스웨덴의 지배를 받아 오던 핀란드는 나폴레옹 전쟁 중 1809년 제정 러시아에 편입되었다.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일어나고 1917년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발발하자 혼란기를 틈타 독립을 선언했다. 독립후 핀란드 내부에서도 사회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반대하고 독립을 지지하는 세력간의 충돌이 있었지만 독립파의 승리로 안정되어 가던차에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없는 상황에서 소련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동유럽과 북유럽을 침공하여 영토를 확장 하던 중 핀란드를 욕심낸다.

소련은 핀란드에 외무장관 몰로토프를 보내 국경지대 일부 영토를 할양(영토를 빌려주는 것)해 줄것을 요구했다. 핀란드가 이를 거절하자,1939년 11월30일 소련은 핀란드군이 국경지대에서 자국군대를 먼저 공격했다는 억지를 내세워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이것이 이른바' 핀란드와 소련의 겨울전쟁'의 시작이다. 전쟁 초기 소련은 26개 사단(약46만명)병력과 전차 2,300여대, 항공기 3,000여대를 동원했다. 그에 비해 핀란드는 10개 사단(16만명)병력에 전차30여대, 항공기 100여대뿐이었고 무전기,포탄등 전쟁물자가 심각하게 부족했다.

비록 군사적 규모에서는 열세였으나 핀란드에는 72세 노장 카를 구스타프 만네르헤임이 있었다. 은퇴중이었으나 다시 복귀한 만네르헤임 장군은 전선(1,000Km)이 매우 길다는 점에 착안했다. 전선이 길 분만 아니라 지형이 눈 덮인 산악지역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작전을 세웠다. 소련군이 지나는 길목을 예측하여 하얀 군복으로 위장하고 스키를 타고 빠르게 이동하며 싸우는 게릴라 전을 펼쳤다.소련은 핀란드와의 전쟁을 쉽게 생각했다. 게임도 안 될 거라고 판단했다. 군사력에 있어서 핀란드는 소련에 비교가 안되기 때문이었다. 핀란드내의 공산주의자들도 자기 편이라는 전제도 있었다.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핀란드내의 공산주의자들도 소련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소련은 일방적으로 이길 줄 알았으나 일방적으로 당하는 전쟁을 해야했다. 첫째, 병력배치를 실수했다. 대규모의 병력을 전선에 따라 길게 배치하여 화력을 분산 시켰다. 둘째, 겨울 전투에 대한 대비책이 너무나 빈약했다. 한 달 안에 끝날 줄 알고 눈밭에서 위장할 수있는 흰색 전투복도 준비하지 않았고, 북유럽의 혹한과 폭설에 대비한 전쟁 물자도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옛날 러시아를 침공했던 나폴레옹의 실수를 답습한 것이다. 수오미살무(핀란드 동부지역)에서 참패하면서 소련은 그제야 자신들의 오만을 깨달았다.

당시 핀란드군보다 4-5배 많은 병력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출귀몰하는 핀란드 스키부대의 공격에 쩔쩔맸다. 이 전투로 소련군은 3만명의 군인을 잃고 전차와 대포등 수많은 전쟁장비를 핀란드군에게 뺏겼다. 그제야 소련은 지휘부를 교체하고 병력을 추가로 투입해 반격에 나섰다. 그 결과 1940년 2월 핀란드의 방어선이 무너졌고 그해 3월 모스크바에서 평화조약을 강제로 맺으면서 겨울 전쟁은 일단락됐다. 겨울 전쟁은 결과만 놓고 보면 핀란드의 패배였지만, 소련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약 105일간 소련군 사상자가 약 20만명인데 비해 핀란드군 사상자는 2만5천명으로 비교가 되지 않았다.

막판 패배로 강제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핀란드의 희생은 컸다. 12%의 인구가 사는 카렐리야 지역을 뺏겼고 핀란드 남부 항구(항코)를 강제로 빌려주는 굴욕적인 협상을 했지만 소련의 합병 야욕을 좌절시키고 독립국가로서 지위를 보장받았다는 점에서 겨울전쟁은 핀란드 역사에 당당한 투쟁으로 남아있다. 소련과의 전쟁은 처음부터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생존은 저절로 지켜지지도 남이 지켜주지도 않는다. 스스로 지켜야 한다. 죽기를 각오한 자에게만 생존의 권리가 주어진다. 열세에 있는 핀란드는 다양한 전술과 전략을 개발했다. 가장 중요시한 전술전략의 결론이 있다.

전군 전사작전이다. 'Die but never surrender' 전투에 투입될 때마다 명령은 '전군전사(全軍 全死)'였다. 패배는 살아있어도 죽은 것과 같다. 패배자는 모든 것을 뺏긴 자이다. 승리는 죽음을 각오한 자만이 가능하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기도한 에스더의 결단이 하만의 계략을 깨뜨리고 유대민족을 살리는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당당한 죽음이 있고 비열한 생존이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은 담대해야 하며 어떤 위협 앞에서도 당당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