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도 수준이 있다

Nov 12, 2017

감사에도 수준이 있다

멀리서 보면 평평한 것 같지만 가까이 가보면 울퉁 불퉁한 것이 땅 표면이다. 멀리서 보면 비슷한 것 같은 산높이가 천차만별이다. 사람의 인생도 먼 발치에서 겉으로만 보는 것과 실제는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부딪히는 현실의 문제도 다양하지만 만나는 사람도 다양하다.같은 문제에 대한 반응도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고마운 일에 대해서 감사하는 수준도 사람마다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감사에도 수준이 있다. 1차원적인 감사가 있다. 조건부(IF) 감사이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되거나 더 많이 갖게 되면 감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남보다 나은 것이 있어야 감사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다른 사람과 견주어 비교우위에 있는 경우만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비교우위에 있지 않으면 항상 불행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은 가진 것보다는 갖지 못한 것으로 불평하기 쉬운 삶을 살게 된다. 비교우위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보고 감사하기 보다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보고 부러워하며 시기와 질투로 시간을 낭비하기 쉽다. 남을 바라보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동안 남의 인생이 낭비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청년이 더운 여름날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한참을 걸어서 음식점에 갔다. 그는 햄버거 하나를 사서 밖으로 나와 야외 벤치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며 먹고 있었다. 이때 자동차 한 대가 햄버거 가게 앞에 멈추더니 한 여자가 내려서 햄버거를 사서 자동차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젊은 청년은 부러운 눈길로 그 남자를 쳐다보며 생각했다.'나도 옆에서 챙겨주는 비서가 있어서 저렇게 자동차 안에서 햄버거를 편히 먹을 수 있는 팔자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자동차 안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던 남자는 벤치에 앉아 햄버거를 먹고 있는 청년을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저 청년처럼 다리가 건강해서 햄버거를 사먹으러 집에서 이곳까지 걸어 올 수 있다면, 그리고 벤치에 앉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이처럼 자기에게 없는것, 자신이 갖지 못한 것만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사는사람은 불행하다. 1차원적인 단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행복을 저울질한다.

자신에게 있는것은 보지 못하고, 항상 어린 아이처럼 남의 손에 들려 있는 장난감을 바라보며 불행을 느낀다.소형차를 타고 다니면 중형차를 타는 사람이 부럽고, 중형차를 타게 되면 고급 세단을 타는사람이 부러워진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욕심의 끝이 있다고 믿는것이다. 욕심의 끝은 없다. 열심히 돈을 모아 좋은 아파트를 장만한 다음에 행복하기는 커녕 불행해지는 경우가 있다.친한 친구가 자기보다 더 큰 아파트에 사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비교의식 때문에 상대적 빈곤감 때문에 속상하게 된다. 우리는 잠시 자신의 손에 있는것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감사하다가도 상대가 나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진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감사와 행복은 사라져 버린다.             1차원적인 수준의 감사는 미성숙한 감사이다. 미성숙한 감사는 유아적인 수준의 삶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이 손에 있을 때만 감사할 수 있는 지극히 제한적인 행복으로써 언제라도 다른 것이 호기심을 자극하면 즉시 불행해지는 위험을 안고 있는 삶이다. 이런 1차원적인 수준의 사람보다 조금 나은 감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보다 못한 사람, 나보다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만족감과 감사를 찾는 사람들이다. 1차원적인 단계의 삶은 남보다 못가진 것 때문에 불행한 삶이라면, 2차원적인 단계의 삶은 나보다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만족감과 감사를 갖는 사람들이다.무엇을 받았기 때문에(BECAUSE) 감사하는 삶이다. 나보다 우월한 사람과 비교하여 불행을 느끼고 다른 사람보다 나은 상황이 되면 감사할 수 있겠다는 수준보다 높은 수준이 될지는 모르나 큰 차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비교한다면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만 보고 부러움과 시기와 질투로 불행하게 사는 사람과는 달리 자신보다 못한 수준에 있는 사람을 보고 자신을 더 받은 사람, 더 행복한 사람으로 여기고 감사하는 수준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쉽게 말해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여 행복과 감사를 느끼는 삶의 수준을 말한다.  걸어 다니는 삶은 병원에 누워 있는 사람을 보면서, 차가 있는 사람은 차 없이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본인이 더 누리고 있다는 것을 감사한다.

진정으로 더 높은단계의 감사가 있다. 3차원의 감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 단계를 말한다. 누가봐도 불행한 상황 가운데서 감사하는 삶이다. 1차원, 2차원의 감사가 조건부 감사라고 한다면 3차원의 감사는 조건을 초월하는 감사이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받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고, 기쁜 일보다는 괴로운 일이 많고 행복하기 보다는 불행한 날이 많은 삶 가운데서도 감사를 잃지 않는 삶이 3차원의 감사의 삶이다. 욥은 잃을 것이 더 이상 없는 완전히 잃은 삶이었고 더 이상의 고통이 다른 곳에는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모든 고통을 홀로 짊어진 삶이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되 완전히 잃어버린 삶이었다. 적어도 성경에 기록된 사람중에는 가장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하나님 앞에 감사했고 찬양했다. 완벽하게 감사와 찬양을 드렸다. 결단코 한마디의 원망도 불평도 없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거라고  아내가 부르짖을 정도로 육신적으로는 지옥 같았다. 그 상황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다.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찬양과 감사가 있다면 욥의 찬양과 감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