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 대한 자세

Oct 01, 2017

고난에 대한 자세

불행한 이유가 고난과 고통 때문이고 아픔과 슬픔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보다는 불행이, 형통보다는 고난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욥기 5장 7절에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다"고 했을 정도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고생이 시작된다. 이사야 45장 7절에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나님은 빛도 어두움도 평안도 환난도 창조하시며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전도서 7장 14절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시며 장래를 속단하지 못하게 하셨다. 형통하다고 큰 소리칠것도, 절망스럽다고 비관할 것도 아니다.  

욥의 식구 중에 아무도 그토록 무서운 일이 하루아침에 일어나리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누가 2001년 9월11일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비행기 테러로  무너질 줄 알았는가? 누가 2004년 12월26일 수마트라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수십만명이 희생될줄 알았는가? 형통이 좋은가? 고통이 좋은가? 복이 좋은가? 재앙이 좋은가? 우리의 선호를 무시하고 상반된 양상이 수시로 나타남은 하나님의 소관에 있다.

궂은 날씨보다 맑은 날씨가 좋은가? 비가오지 않고 태양만 내리쬔다면 땅은 말라 굳어지고, 흙먼지가 날리는 황야가 되고 급기야   식물도, 동물도, 사람도 살 수 없는 사막이 되고 말것이다. 재산과 인명 피해로 태풍이 반갑지 않지만 태풍은 바다 아래 위를 뒤집어 산소 함유량을 증대시킨다. 풍성한 산소로 플랑크톤이 많아지고 수산자원이 풍성해진다. 태풍은 육지에도 영향을 준다. 강한 바람은 나무의 뿌리를 견고하게 하고,정체된 삼림의 공기를 순환 시켜준다. 태풍이 피해만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유익을 준다.  

우리의 인생에도 태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질 때가 있다. 원인 모를 고난이 찾아 오기도 한다. 고난은 성도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 고난을 거부할 수 없다면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가 관건이다.원망과 절망으로 받아 들일수 있고, 감사와 은혜로 받아 들일 수 있다. 결과는 축복이 될 수도,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고난 당할 때 불평하고 원망한다. 고난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고난에 대한 자세는 선택할 수 있다. 원망하느냐 감사하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 긍정적으로 보느냐,- 나의 선택에 의해 마음과 영혼을 파괴하고 평강과 기쁨과 소망을 산산조각 낼수도 있고, 반대로 무너지고 쓰러진 내 마음과 영혼을 다시 일으켜 세울수도 있다.  나의 선택에 따라 고난은 악마가 되기도 하고, 천사가 되기도 한다. 망하게도 하고 흥하게도 한다.

또한, 고난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절대적인 수단이 된다. 고난없이 달라지는 사람을 보았는가? 고난에 의해서 자아가 깨어지고, 인격적으로 다듬어지고, 하나님과 더욱 가까와지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해준다.나태했던 사람이 부지런해지고, 기도에 무관심했던 사람이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를 도전한다. 하나님을 무시했던 사람이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긴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는 시편기자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된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이다.

대장간하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쟁기 만드는 노하우를 전수해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 애야 ! 훌륭한 쟁기를 만들려면 풀무 불에 여러 번 들어가야 하고, 많이 때려야 되느니라. > 즉 훌륭한 쟁기는 여러번 풀무불에 들어가고 수없이 매를 맞는 과정에서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위대한 신앙인들의 이력서를 살펴 보면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고난으로 깨어지고 바닥까지 내려갔고, 그후 하나님이 높이셨다. 야곱은 20년 동안 온갖 고난과 시험을 당했으며, 요셉은 13년, 다윗은 반 평생, 모세는 40년 혹독한 고난의 훈련을 받았다. 신앙의 성장과 성숙은 고난을 통과하면서 만들어진다.

믿음의 사람은 고난 뒤에 있는 축복을 바라본다. 폭풍 후에 떠오를 태양을 바라본다. 그것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바라보았다. 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 요셉도 믿음의 눈으로 고난 뒤에 올 <축복>을 보았다. 모세도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 믿음의 사람들은 현재의 고난을 보면서 낙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고난 뒤에 오는 축복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사랑하는자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좋으신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