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결단이다

Aug 20, 2017

믿음은 결단이다

누가복음 9장의 후반부를 보면 제자가 되겠다며 예수님을 찾아온 세 사람이 등장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은 애써 만류하시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신다. 첫 번째 남자는 말했다.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가겠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눅9:57-58)고 경고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를 좇는 길은 '안정된 주거'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두 번째 남자는 방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므로 얼른 돌아가 장례를 치르고 나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했다. 이에 예수님은 "죽은 사람들을 장사하는 일은 죽은 사람에게 맡겨 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눅9:60)고 말씀하셨다.

가족의 초상을 치뤄 본 사람은 잘 안다. 당장의 장례식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과 아픔이 잦아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것을.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지 말아라.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말씀이 과연 주님의 입에서 나왔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세 번째 남자는 예수님을 따르고 싶지만 먼저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주님은 역시 허락지 않으시며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눅9:62). 한마디로,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전폭적이고, 최우선적이며, 절대적인 헌신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노숙자가 되어라. 아버지의 장례는 죽은 이들에게 맡겨라. 가족과 작별 인사조차 나누지 말라.'

충격적이지 않은가? 누가복음 9장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지 말라고 설득하고 있는 것 같다. 좀 심하게 말하면 장사꾼이 물건 사러 온 손님 에게 안 판다고 내쫓는 것과 같다. 제자를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나마 좇아 오겠다는 사람마저 사양하는 모습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제자를 필요로 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 곳곳에서 누가복음 9장과 비슷한 종류의 사건들을 찾아 볼 수 있다.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예수님을 좇으려는 사람들을 돌려보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사람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눅14:26).

주님은 한술 더 떠서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눅14:27). 고 하셨다. 앞의 말씀보다 더 가혹한 명령이다. 아예 형틀을 짊어지고 따라오라는 소리가 아닌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씀인가? 계속해서 구도자들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말씀을 하신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라도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없다"(눅14:33).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족들까지 미워하라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인가? 마가복음 10장에서는 젊고 부유한 엘리트 한명이 찾아왔다. 그야말로 수제자가 될 잠재적 가능성이 충분한 젊은이였다. 그리고 열심이 특심해서 언제든지 주님을 좇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선하신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17절)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물질도 필요한데 부자 청년을 환영하고 사역에 등용시킬 계획을 구상하는 것이 아니라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디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막10:21).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계획은 부자 청년을 발가벗겨서 거리로 내몰자는 것이 아니다. 영원한 보물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세상과 세상 것에 대한 사랑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보화가 감추인 밭을 사러 가는 사람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비웃었을 것이다. 하늘나라는 목숨을 내놓고라도 소유해야하는 값진 보물이다. 하늘나라 소유는 세상 전부와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하늘나라를 거부하는 손해는 하늘나라를 소유하기 위한 지불과 비교가 안된다. 세상이 제공하는 것은 싸구려 모조품이다. 모조품은 많이 소유할수록 많이 지불하수록 실패가 크다. 하늘나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해도 절대 손해나지 않는 엄청난 수익이 보장된 투자이다.

보통 헌신 또는 희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결과는 헌신도 희생도 아니다. 헌신과 희생은 나의 전부와 하나님의 전부를 바꾸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보다 큰 축복과 성공적인 인생이 있는가? 왜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나서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버린다고 했는지 아는가? 우리 앞에 기가막힌 기회가 주어져 있다. 지금 내 자신의 결정이 영원히 후회할 결정인지 아닌지 확인 해야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받아 들일 것인지 내 생각대로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하늘나라도 소유하고 세상도 소유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냐 세상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갈등하고 방황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결단은 빠를수록 좋다. 예수님을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부자 청년은 안타깝게도 어리석은 결정을 했다. 재물이 없었으면 좋을 뻔 했다. 많은 소유가 잘못된 결정을 하게 만든 것이다. 절망에 부딪혀 처절하게 주님께 매달려야 하는 사람은 복 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