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이라는 빙산

Jun 18, 2017

자만이라는 빙산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화려했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 호가 대서양에 침몰해 1,500 명이 죽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타이타닉 호는 1912년 4월 10일 영국 남해안의 사우스샘프턴 항을 출발하여 미국 뉴욕 항으로 운항하던 중 뉴펀들란드 인근의 대서양에서 떠내려오던 빙산과 충돌해 4월 15일 해저 3900m의 심해에 가라앉았다. 빙산에 부딪힌 시간은 14일 오후 11시40분이었고, 완전 침몰한 시간은 15일 오전 2시20분이었으니 160분만에 상황이 모두 종결된 것이다. 승무원을 포함해 탑승객은 모두 2,193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거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492명이 목숨을 잃었다. 여성과 어린이들이 구명정에 먼저 타도록 했기 때문에 사망자의 대부분은 남성이었다. 이 항해는 타이타닉 호의 처녀 항해이자 마지막 항해였다. 스미스 선장 또한 이 항해가 마지막 항해가 되었다. 타이타닉 호의 침몰 사고는 영화로 만들어져 더욱 유명해졌다. 비극적인 사건에 안타까운 로맨스가 더해져 영화는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영화적 지식일 뿐, 타이타닉 호가 왜 침몰했는지에 대해서는 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그리 알려져 있지 않은 경향이 있다. 타이타닉 호의 침몰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재해였을까? 아니면 인간의 힘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재해였을까? 당시 배의 통제권을 쥐고 있었던 선장이 좀더 주도적이고 세심했다면 이와 같은 대재앙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타이타닉 호의 침몰에 인간이 통제할 수 있었던 결함은 없었는지, 한번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은 1850년 영국 출생으로, 서른 살인 1880년에 화이트스타 라인(White Star Line)에 입사한 이후 초호화 여객선만 주로 담당한 베테랑 선장이었다.그의 별칭이 '백만장자 선장' 또는 '억만장자 선장'이었다는 것만 봐도 그가 맡은 여객선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타이타닉 침몰시 그의 나이는 예순두살이었다.

 

그러나 베테랑 선장의 경력에도 흠집은 있었다. 타이타닉 호에 승선하기 6개월 전에 그는 초호화 여객선인 올림픽 호 선장을 맡아 운항하던 중 영국의 순양함 호크와 충돌 사고를 일으킨 바 있다. 또한 셰르부르의 승객을 태우기 위해 사우샘프턴에서 출항하다가 정박 중이던 뉴욕 호를 들이받을 뻔하기도 했다. 그는 타이타닉 호를 운항하던 중에도 결정적 과오를 범했다. 빙산 경고를 무시한 것이다. 스미스 선장은 4월에는 항상 빙산이 많이 떠내려 온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비슷한 시각에 같은 항해 노선을 운항하던 배들로부터 빙산이 떠돌아다니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도 많이 받았다. 4월11일 6번의 경고, 12일에는 5번, 13일에는 3번, 충돌 당일인 4월14일에는 7번이나 경고가 들어왔다. 그러나 스미스 선장은 이 경고를 별일 아닌 것처럼 무시했다. 빙산이 적게 오는 해역으로 노선을 바꾸지도 않았고 속도를 줄이지도 않았다. 도착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데만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여객선의 안전보다 자신의 명예를 더 중시했다. 타이타닉 호의 통신사였던 잭 필립은 승객들의 전보를 처리하느라 정신없던 와중에 인근의 캘리포니아 호에서 빙산경고를 보낸 통신사에게 "닥쳐"라고 소리질렀다. 타이타닉 호의 운영에도 문제는 있었다. 우선 타이타닉 호는 시속 22노트로 과속을 했다. 왜 과속을 했을까? 타이타닉 호는 영국 남해안의 사우샘프턴 항을 출발하여 뉴욕 항으로 가던 중에 프랑스의 셰르부르와 아일랜드의 퀸스타운을 거쳤다. 그런데 두 항구에서 출항하는 시간이 예정보다 지체되었다. 좀더 많은 승객을 태우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뉴욕으로 갈 때 정규 속도보다 빨리 운항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와중에 스미스 선장은 배에 탐조등과 망원경을 설치하지 않았다. 당시 상선에는 항해등만 설치하면 되었고, 탐조등과 망원경은 의무사항이 아니었다. 하지만 초호화, 여객선이라면 탐조등과 망원경 망대가 설치되었어야 했고, 만약 그랬다면 다가오는 빙산을 선원들이 미리 발견해 충돌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야간에 빙산 충돌 위험이 있을 때는 일반적으로 5명의 인원을 배치하여 해상감독을 맡겨야 하는데, 스미스 선장은 규정을 무시했다.뱃머리에 선원을 세우고 선교 양측에 항해사를 한 명씩 배치해 어둠 속의 바다를 관찰하도록 하는 추가 조치를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타이타닉 호 자체에도 있었다.공학기술의 경이라는 찬사를 받았건만 타이타닉 호의 설계에는 사실 문제가 많았다. 선체에 물이 들어오면 물이 선체 내 다른 곳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도록 하는 수밀격실을 16개나 만들었으나 수직격벽을 세우지 않았고 세계 최고의 초호화 여객선에 어울리도록 계단을 많이 만드느라 방수갑판 구조를 만들기가 힘들었다. 결국 수밀격실의 역할은 무의미해지고 말았다. 사고가 난 직후의 대응 역시 관리 소홀의 극치였다. 경험이 부족한 신참 선원들을 구명보트 대원으로 배치되면서 서투른 관리로 1,178명을 태울 수 있는 20척의 구명정으로 711명만 태웠다. 두 개의 빈구명보트는 배와 함께 침몰할 정도였다.

스미스 선장은 선원의 관례대로 구명정을 타지 않고 침몰하는 타이타닉 호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 앉았다. 37년간의 바다생활을 안타깝게도 불명예스럽게 끝내고 말았다. 자만으로 바뀐 자신감이 두려움없이 빙산을 향해 돌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자신감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자신감이 자만으로 변질될 때 파멸을 성공으로 보는 심각한 착시 현상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