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Mar 26, 2017

 

개혁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에 시작되었다. 그날은 천주교에서 제성절이라고 불리는 명절날로 세상을 떠난 많은 성자들을 숭배하는 날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들었다. 그날 독일의 신부이면서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 교수인 마틴 루터가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 교회 정문에 게시함으로써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2주일만에 이 개혁운동은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개신교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래서 10월 31일은 우리 개신교의 생일과 같은 날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시작은 1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체코에서 가장 존경받는 민족의 영웅, 얀 후스에 의해 시작된다. 얀 후스는 프라하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고, 총장을 역임했으며 가톨릭 사제로 서품 받은 성직자였다. 후스 생애에 큰 전환점은 존 위클리프의 글을 접하게 된 것이었다. 위클리프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성을 떨치던 교수였는데 그는 당시 중세 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점, 고쳐야 할 점을 지적하는 글들을 많이 썼다. 그는 종교개혁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은 얀 후스는 위클리프의 글을 번역하여 보급하고, 성서를 체코어로 번역하여 복음의 대중화에도 힘썼다. 그리고 가톨릭과 교황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가톨릭교회의 개혁과 변화를 촉구했다. 면죄부 판매와, 교황을 비롯한 고위 성직자들의 세속화를 강력히 비판했다.

 

가톨릭교회가 자신들의 권위에 반하는 행동을 일삼는 얀 후스를 가만히 둘리 없었다. 얀 후스는 교회로부터 추방을 당하고 프라하에서 설교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결국 이단으로 몰려 1415년 7월 6일 화형에 처해진다. 후스는 체코 말로 '거위'라는 뜻을 갖고 있다. 얀 후스가 화형을 당하면서 백 년 이내에 종교 개혁이 일어날 것을 예언 하면서 이렇게 외쳤다. "지금은 당신들이 거위 한 마리를 불태우고 있지만, 백년 후 백조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 백조까지 불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백년 후 나타난 백조는 바로 마틴 루터였다. 자신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고 반드시 꽃을 피우게 될 것을 내다 봤던 것이다.

 

후스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진리의 추구’였다. 그는 이렇게 역설했다. ‘크리스찬들이여, 진리를 찾으라. 진리에 귀를 기울이라. 진리를 배우라. 진리를 사랑하라. 죽음을 두려워 하지 말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사수하라. 진리는 교황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리는 성경속에 있다.’그에게 진리의 기준과 진리의 표준은 성경 말씀이었다. 오늘날도 후스는 체코인들이 가장 추앙하는 인물이며, 현재까지 후스가 화형당했던 7월 6일은 체코의 국경일로 지정하여 그를 기리고 있다.

 

당시 로마 카톨릭은 썩을 때로 썩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면죄부였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 기치를 들게 된 직접적인 동기도 면죄부 판매 때문이었다. 당시의 교황인 레오10세가 로마에 있는 베드로 성당을 증축하던 중에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면죄부를 고안해 냈다. 성경에 나오지도 않는 연옥을 말하면서 연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면죄부를 사면 '돈이 돈궤에 떨어지는 순간 댕그랑 소리와 함께 연옥에서 나와 죄 사함을 받고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가르쳤다.

 

독일에서는 '테첼'이라는 사제가 파송을 받아 면죄부 판매에 앞장섰다. 그 광경을 본 루터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할 수가 없었다.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을 듣고 그것을 사겠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불쌍했다. 그래서 루터는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에 붙이게 된 것이다. 그 행동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롬1:17절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말씀을 붙들고 싸웠다.루터는 개혁하면서 정치적인 방법을 쓰지 않았다. 정치적인 구호를 외치지 않았다. 자기가 설교하던 교회, 자기가 가르치던 학생들 앞에 95개조항의 성경에 기초한 반박 문을 걸고 개혁의 기치를 들었다. 이 반박 문에 나타난 종교개혁의 기본 원리는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였다.

 

그런데 점점 이 '오직'이라는 단어가 희석되어져 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개혁을 하자고 개혁한 교회들이 이제는 그 개혁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사회는 거세게 교회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어버렸고, 성도가 성도다움을 잃어버렸고, 목회자가 목회자다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회의 요구를 외면하지 말자. 개혁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이다. 나에게서 방황하는 탕자의 모습을, 불순종하는 요나의 모습을, 음탕한 고멜같은 모습을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회개해야 한다.개혁은 낡은 건축물을 리모델링하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을 현대식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개혁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진리에서 벗어난 것을 고치는 것이다. 말씀으로 돌아가 하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다. 사람이 중심 되었던 교회를 하나님 중심의 교회로 바꾸는 것이다. 열방을 품는 교회, 열방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교회로 바꾸는 것이 개혁이다. 개혁은 구호를 외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개혁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