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을 가르치기 위한 역경

Mar 19, 2017

순종을 가르치기 위한 역경

구약 성경 전반에 걸쳐,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의 체제를 따를 것인지를 판가름하기 위해 하나님이 그 백성을 시험하시는 상황들이 많이 나온다. 요셉은 리더쉽 준비의 일환으로 유다 시험과 성실성 시험과 인내 시험과 성공 시험을 거쳤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의 광야 여정 기간에 여러 차례 시험을 당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8:2) 당신은 "어째서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실 필요가 있단 말입니까? 그 분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를 모두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그러나 우리는 모른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아직 우리에 대하여 모르는 어떤 것을 알아내시기 위함이 아니다.

그가 우리를 시험하시는 까닭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과 그분의 사랑과 능력과 신실하심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창2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 모리아 땅에 가서 그의 아들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게 하신 것이다. 이삭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독자였다. 그럼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당초의 약속을 무효화시키는 것 같은 의혹을 사기 십상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케 하는 시험을 통해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지를 아브라함 스스로 확인하게 하셨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시26:2)라고 했다. 모든 시험은 어떤 식으로든 순종을 요구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실 때, 그분은 우리 마음의 참된 상태를 드러내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가, 아니면 자기 뜻대로 행하는가? 이미 자신은 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시험을 당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역경에 직면할 때, 우리는 대체로 세 가지 중 하나의 반응을 보인다. 첫째, 분노한다. 역경이 닥칠 때마다, 우리는 "주여, 왜 내가?"라고 말한다. 우리는 분노하며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비난한다. 자신을 희생자로 여기고, 자신의 불평스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나님께 요구한다."주여, 어찌하여 나를 사랑하지 않으십니까? 왜 내게 부당하게 대하십니까?" 우리는 삶과 건강과 부유함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자신의 권한이라고 생각한다. 둘째로 역경에 대한 또 다른 반응은 금욕적인 태도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단지 인내하기만 하는 것이다. 감정을 억제하여 참고 있는 것은 인내라고 보기 어렵다. 진정한 인내는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스스로 위로하고 상황을 합리화하면서 견뎌 보지만 마음은 지옥 깊숙히 내려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벗어날 수 없다. 역경을 통해서 우리와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더욱 멀어지는 것이다.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 네가 알게 하리라"(사45:3)고 하신 말씀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보다 깊은 관계에 들어갈 때 비로소 그분의 은밀한 보화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로 역경을 기쁨으로 받아 들이는 자세가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반응이 바로 이것이다. 역경이 닥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안식하며, 최선의 길을 알고 계신 그분을 신뢰한다. 그분의 허락없이는 아무 일도 우리에게 일어날 수 없음을 잘 안다. 우리에게 닥치는 고통은 징벌이 아니라 우리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하나님의 배려라는 것을 아는 성숙한 믿음이 증명되는 기회가 된다.

기쁨으로 시련을 통과할 때, 신앙은 성숙한다. 시련을 통해 우리안에 이루시는 일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 때, 내적 기쁨을 갖는다.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8:10). 이것은 야고보가 말했던 기쁨이기도 하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것임이니라"(약1:2,12) 분노는 역경에 대한 자연스런 반응이다. 억지로 참는것 역시 자연스런 반응이다. 그러나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그것은 초자연적이다. 그것은 자신의 인격으로부터 나올 수있는 반응이 아니다. 오직 보혜사 성령께로부터 나올 수 있는 선물이다.

구약 성경의 책들 가운데 눈에 잘 띄지 않는 하박국이라는 짧은 선지서가 있다. 거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조만간 바벨론의 침공을 당할 것임을 선지자 하박국에게 알려 주었다. 극심한 환난의 예고는 절망과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러나 하박국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합3:17-18) 만일 하박국이 환난에 직면하여 기뻐할 수 있었다면 우리 역시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도 주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 시련과 역경이 생략된 인생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역경 앞에 무너져 끝난 인생이 있고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인생이 있다. 역경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이 예수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