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두 아들

Mar 14, 2015

탕자의 비유에서 흔히 탕자에 해당하는 아들을 둘째 아들로 본다. 둘째 아들은 가족을 실망시키고 방종하고 방탕한 삶을 산다. 그는 완전히 통제불능 인간이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미리 챙긴후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다. 아버지와의 단절을 너무 가볍게 아니 시원하게 생각하고 미련없이 떠났다. 물질만 챙길수 있다면 하나님과의 단절을 전혀 부담 갖지 않는 죄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죄의 출발이 선악과 탈취였다는 것을 탕자 비유의 둘째 아들이 보여주고 있다. 탕자 비유에는 탕자가 또 하나 있다. 첫째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철저하게 순종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한 것이다.그는 완벽한 절제력을 가졌고 자기 수양이 잘 된 사람 이었다. 전통적 기준으로 보면 둘째 아들은 '나쁜 아들' 첫째 아들은 '좋은 아들'이다.

그러나 두 아들은 모두 아버지와 멀어져 있다. 집 나간 둘째 아들만 아버지를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 첫째 아들도 아버지를 떠나 있다. 아버지가 배설한 잔치 자리에 두 아들을 초대하기 위해 아버지는 나가서 각각 두 아들을 초대해야만 했다. 잃어버린 아들은 하나가 아니 라 둘이다. 탕자의 비유의 결말은 생각 밖의 결말이다. 이 비유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첫째 아들이 아버지와 멀어진 상태에서 의도적 으로 이야기를 끝낸다. 나쁜 아들은 아버지의 잔치에 참여하지만 좋은 아들은 거부한다. 창녀와 뒹굴었던 자는 구원받지만 강직한 도덕의 소유자는 여전히 잔치자리 밖에 잃어버려진 채로 남아있다. 좋은 아들의 결말을 듣고 충격받을 사람들이 있다. 바리새인들이다. 첫째 아들이 직접 말하는 잔치 자리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더 충격적이다.

"왜냐하면 나는 결코 아버지에게 불순종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첫째 아들은 선하지 않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 선함 떄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잃는 것이다. 첫째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벽을 만드는 것은 그의 죄가 아니라 도덕적인 삶이다. 그의 악행이 아니라 의로움이 그로 하여금 아버지의 잔치에 참예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수가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정답은 다음과 같다. 이 두 형제의 마음은, 그리고 이들이 나타내는 두 가지의 삶의 방식은, 얼핏 보기보다는 훨씬 서로 닮아있다. 둘째 아들이 인생에서 가장 원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는 가족의 돈을 쓰는 데 아버지의 감독을 받아야만 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둘째 아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스스로 자기 몫의 재산을 사용하기를 원했다.

둘째 아들은 이러한 권리를 어떻게 얻어 내었는가? 대담한 권리 주장과 공동체의 기준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완전한 독립 선언을 함으로써 이를 얻어냈다. 첫째 아들이 가장 원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 역시 동생과 똑같은 것을 원했음을 알게 된다. 그는 동생과 똑같이 아버지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첫째 아들 역시 아버지 자신보다는 아버지의 재산을 더 원한다. 그러나 동생이 멀리 떠나 있는 동안 첫째 아들은 아버지 가까이에 머무르며 "결코 거역하지 않았다." 이것이 주도권을 장악하는 그의 방식이었다. 그가 말로 표현하지 않았던 요구는 이것이다. "나는 결코 당신에게 거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내 인생의 일들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해주셔야 합니다." 이 두 형제의 마음은 똑같았다.

두 형제 모두 아버지의 권위에 대해 분개했으며 그것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고자 했다. 두 형제 모두 아버지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할 수 있는 위치를 갖게 되기를 원했다. 다시 말하자면, 두 아들 모두 아버지에게 반역한 것이다. 비록 한 아들은 매우 나쁘게 행동함으로써 반역했고, 다른 아들은 지극히 착하게 행동함으로써 반역했다. 두 아들은 모두 아버지의 마음에서 이미 떠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잃어버린 아들이었다. 한 아들은 집 밖에서 잃어 버렸고 한 아들은 집 안에서 잃어 버린 것 뿐이다. 예수님이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어떤 아들도 아버지를 아버지 자체로 사랑하지 않았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를 그 자체로 사랑하고 기뻐하고 섬긴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목적을 위해 아버지를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바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규율들을 어기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규율들을 모두 지키는 것, 이 두 가지 모두 하나님에게 반역하고 그에게서 멀어지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규율을 어기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는 하나님의 규율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적인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닌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을 섬겨도 무방한 사람이 있다. 굳이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인가?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 때문인가? 돌아온 둘째 아들은 일자리 때문에 돌아왔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위해 품군으로 채용해주기를 요청한다. 자기중심적인 목적을 위해 자기 방식에 의해 아버지를 대하는 자세는 변함이 없다. 집으로 돌아 왔으나 아들로 돌아 온 것은 아니다. 한편 첫째 아들은 아직도 밖에서 잔치자리 를 거부하며 버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