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를 무너뜨리는 사람

Feb 13, 2015

광야 생활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만나를 내려주신 것과 함께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 또 하나 있다.그것은 바로 여리고 성이 무너진 사건이다. 이 두 사건은 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는데, 우선 만나 사건은 홍해를 건넌 직후에 일어난 사건이고, 여리고 성이 무너진 사건은 요단강을 건넌 직후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즉, 만나 사건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본 후에 경험한 사건이었고, 여리고 성이 무너진 사건은 요단강이 마르는 기적을 본 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 두 사건은 모두 인간이 무엇인가를 한 것이 없이 하나님 홀로 하셨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럼에도 이 두 사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진 사건은 무너질 것을 믿어야(보지 않고) 하는 믿음이 전제 되었고, 만나 사건에서는 이미 내려진(이루어진) 만나를 보고 믿었다. 정확히 말해 하나는 믿음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고, 하나는 믿음과 관계없이 일어난 사건이다.

우리는 이 여리고 사건을 통해 약속의 땅을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넌 후 무려 40년 가까이 광야에서 방황한다. 40년 방황 속에서 모세를 포함한 구세대가 다 죽은 후 여호수아를 비롯한 신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공격할 때에, 남부나 북부가 아닌 중부지방 허리를 자르며 들어가게 하셨다. 이전략은 적을 앞뒤에 두는 어리석은 전략이다.적의 포위망에 스스로 들어간 것이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싸웠다. 하나님은 일부러 하나님만 의지해야하는 상황으로 몰아 넣으신 것이다. 하나님이 늘 하시는 방법이 있다. 우리를 적의 포위망 속으로 밀어 넣어 필사적으로 하나님 만 의지하게 만드시는 것이다. 하나님만 의지하여 싸우는 전쟁은 치열할 수 밖에 없다. 광야 역시 하나님만 의지하는 훈련이었다. 광야 훈련에서 탈락한 사람은 가나안에 들어와도 전투를 감당 못하고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땅을 얻었다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은 광야 훈련을 통과한 여호수아의 군대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기업을 어떻게 성취해 가는가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이미 주셨다. 이것은 완료형이다. 이미 주셨음에도 아직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쟁이 필요없는 빈땅을 주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원주민이 살고 있는 땅을 주신 것이다. 필연적인 전쟁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그 약속은 승리에 대한 약속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다. 가나안 땅을 주셨을 때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줄로 생각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탐꾼의 말을 듣고 혼비백산했던 것이다. 전쟁없는 정복을 기대했었던 것이다. 정복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전제로 한다. 전쟁없는 정복도 승리도 없다. 구원이 은혜라는 것을 일방적으로 생각하기 쉽다. 우리 입장에서는 무료이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전부인 독생자를 희생시키는 댓가를 지불하신 것이다.

누가 지불했느냐가 다를 뿐이지 필연적인 댓가 지불이 있었다. 하나님이 이미 부어 주신 만나도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는 댓가를 지불한 사람에게만 주어졌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만 믿으면 저절로 복을 받는 줄 알았다가, 그 속에 성화를 위한 치열한 싸움이 있음을 깨닫고는 아예 일찌감치 두 손 들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싸워서 이겨야할 적이 이미 가나안 땅에 진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안에 이겨야할 적이 진치고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무주공산으로 있으리라 착각해던 이스라엘 백성은 적 앞에 겁을 먹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불신앙의 사람들은 단 한 평의 땅도 차지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가나안 약속은 승리의 약속이다. 그 약속을 믿고 나가는 사람은 전쟁에서 승리한다. 승리의 약속은 말로만의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약속이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이겨야할 적도 없다는 약속이 아니라 문제가 있고 적이 있을지라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필승의 약속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후 가장 먼저 마주친 커다란 성이 여리고 성이었다. 여리고 성은 접경지대의 첫 관문으로써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했다. 어느 성보다도 크고 견고했고 군사들은 잘 훈련된 정예 용사였다.그런데 이상한 점은 40년 광야에서 방황하던 오합지졸 같은 이스라엘 백성이 겁을 먹은 것이 아니라 여리고 성의 군대가 겁을 먹고 성문을 꼭 닫고, 방어태세에 전력하는 모습이다. 정탐꾼의 말을 통해서 그 이유가 밝혀진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홍해를 가르고 건너 왔고, 요단강을 마르게 하고 건넜다는 소문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많은 기적의 소문을 듣게 된 그들은 마음이 물같이 녹아 버린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과의 전쟁은 실제로는 하나님과의 전쟁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싸우시는 사람을 과연 누가 이길수 있는가?

이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영적 권세이다.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무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위엄과 권위를 느끼게 만든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오만하고 패역한 무리들을 두려움으로 떨게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을 대항하는 불신 세력을 무릎꿇게 하는 위대한 힘은 오직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데서 비롯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를 나타내는 것이다. 패역하고 교만한 세상은 설명해서 돌아오지 않는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혁혁한 증거를 보여주어야할 사람들이 바로 우리이다. 우리가 세상에 머무는 동안 해야할 사명이 무엇인가? 하나님만이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