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사람

Oct 24, 2014

모세가 양떼를 이끌고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을 때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나무는 타지않고 불꽃만 타오르는 신기한 장면을 이상히 여겨 다가 갔을 때 떨기나무 속에서 음성이 들려온다."모세야! 모세야!" 40년만에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애굽의 왕자로서 왕궁에 있을 때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어쩔 수 없이 애굽 왕궁을 떠나게 된다. 왕궁을 떠난다는 것은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리에서, 막강한 권세와 권력의 자리에서 떠나는 것을 말한다.왕궁을 떠난 모세는 어디로 갔는가? 차기를 도모하기 위해 망명처를 물색하여 피신하지 않았다. 정처없이 광야로 갔다.광야는 기존의 지위와 권세가 소용없고, 실력과 능력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이루어 놓은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없었던 것이 되어버리는 곳이다.

한때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모세 당시 애굽왕 바로는 투트모스 1세였는데, 성경에 등장하는 바로 공주는 이 바로 왕의 무남독녀로 이름은 하셉수트였다.그녀는 무남독녀로 법적으로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유일한 위치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로부터 신임과 존경을 받는 리더십이 대단한 여자였다. 하셉수트의 동상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얼굴 부분이 깨어져 있다고 한다.깨진 이유가 있다.후대에 왕위에 오른 왕들이 하셉수트에 대한 백성들의 존경과 그리워함을 시기하여 일부러 그녀의 동상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은 "그 여자는 우리가 아는 대로 애굽 역사상 첫째로 꼽히는 위대한 인물이었다"라고 평가한다. 만일 모세가 애굽을 떠나지 않았다면 대제국 애굽의 왕이 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왕에 버금가는 권력의 중심부에 있었을 것이다.

감히 누가 그를 살인자로 정죄하고 처벌할 수 있겠는가?애굽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권력자로서 얼마나 당당하고 자신만만 했을 것인가? 그런데 지금 이 꼴이 뭔가? 자신의 모습이 이렇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노예의 아들이 하루아침에 공주의 아들이 된 것도 꿈같은 일이지만 왕자가 하루아침에 목동이 된 것도 꿈같은 일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도 운명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죽지 못해 사는 것처럼 비참한 것도 없다. 나이 팔십에 장인의 양을 치면서 연명하는 모세를 누가 알아보겠는가? 알아주는 사람도 인정해 주는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 고독하고 쓸쓸한 노년을 보내는 모세 심정은 어땠을까? 바로 이때 모세가 지은 시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시편 90편이다. 광야에서 생활하던 모세의 심정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40일도 아니고, 무려 40년 동안 그는 쓸쓸한 광야에 그렇게 던져져 있었다. 인생의 광야에 던져진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이 있다.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책임을 전가하면서 남을 증오하는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을 주변 사람의 탓으로 돌리며 마음에 증오를 품는다. 부모,형제,동료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증오하고 미워한다.이런 사람은 가능하면 사람들과 접촉하려고 하지 않는다.얼굴은 항상 굳어 있다. 웃음을 잃어버리고 언제나 비판적이다. 마음 속에 쌓인 분노와 증오는 언제가 폭발하게 된다. 폭발이 남의 삶을 파괴하거나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극단적인 결과로 나타난다.마음에 잠재되어 있는 것은 반드시 표출되게 되어 있다.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이냐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모세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그는 40년 동안 양떼를 치고 있다. 팔십의 나이에 한때 대제국의 왕자였던 그가 믿어지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이런 일은 못한다"고 하지 않고 묵묵히 양떼를 따라 다닌다. 미디안 광야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한때는 하나님을,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을 증오하고 원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원망하지 않고 맡겨진 양을 성실히 보살핀다. 40년이 아니라 평생을 바칠 자세로 양떼를 돌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양떼를 이끌고 광야 서쪽에 있는 하나님의 산, 호렙에 간다. 풀을 찾다가 우연히 간 것이 아니다.의도적으로 간 것이다. 광야 서쪽은 애굽에서 상당히 먼거리이다. 그 곳에 간 이유는 하나님의 산이라는 것 때문이다.

어렸을 때, 유모 역할을 하는 친어머니의 품에서 하나님의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하나님을 찾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다 내손아귀에 있는데 왜 하나님이 필요한가? 하나님을 찾는것은 고사하고 하나님이 안 계셔도 무방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더 이상 소망도, 희망도 없다. 가진 것도 없다. 모든 것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그제서야 하나님이 생각나고 하나님의 산에 대한 기억이 났다. 양떼를 데리고 하나님의 산 주변을 맴돌며 풀을 먹인다. 하나님이 혹시 나타나시지 않을까?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꿈을 접지 않고, 호렙 산을 떠나지 않는다.결코 포기하지 않는 모세를 하나님은 지켜보셨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안보인다고 말하지만 안보이는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신다.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나서야 하나님이 생각나고 하나님을 찾게 된다. 이미 옛날부터 모세를 보고 계시던 하나님이 호렙산에 와서야 하나님을 찾는 모세를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부르신다. 모태신앙이었지만 인생 끝에 와서야 하나님을 만난다.나일 강에 버려지듯 광야에 버려졌던 모세를,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모세를 하나님은 버리지도 잊지도 않으시고 80년만에 만나 주신다. 잃어버렸던 모세 자신을 찾아주신다. 하나님을 잊은 사람,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다.하나님을 잃은 것은 하나님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난 후 비로서 자기를 잃어버렸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지고 있는 세상 것 때문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후회하게 되는 날이 온다. 누구의 인생을 사는건지도 모르고 살다 끝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