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탕자, 불행한 탕자

Nov 09, 2013

더 나은 인생을 꿈꾸고 이민 왔지만 더 나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더 나쁜 삶을 살기 위해서 이민 온 사람은 하나도 없다. 경험해보지 않은 일을 하게 되는것이 이민 생활이다. 경험해보지 않은 일은 두 가지다. 지금까지 경험해 본 일보다 더 좋은 일이 있고 더 나쁜 일이 있다. 일단은 쉽고 재미있기 보다는 어렵고 힘든 일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민 세대별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세대를 초월해서 가장 힘든 세대가 있다. 이 땅에 가장 먼저 이민 온 사람들이다. 누군가? 청교도들이다. 미국 땅을 처음 밟은 그들에게는 현재의 우리와는 비교가 안되는 열악한 환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홍해를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 앞에 광야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들 앞에는 끝없는 황무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끝없는 황무지는 끝없는 고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증거였다.그러한 그들이 이민 온 첫해 늦은 가을 하나님 앞에 모여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이 미국 추수 감사절의 시작이다.이미 구약에도 추수 감사의 성격을 가진 수장절을 지키도록 하나님께서 명령 하셨지만 현대적 수장절인 추수감사절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청교도들은 영국에서 극심한 신앙의 핍박을 받았다. 1558년 처녀의 몸으로 왕이 된 메리 여왕은 광신적인 카톨릭 신도로서 많은 청교도들을 잡아다가 불에 태워 죽일 정도로 잔인했다. 청교도들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핍박과 희생을 당했다. 피의 여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잔인했던 메리 여왕은 5년 후 온몸에 알 수 없는 피부병(독창)이 번져 비참하게 죽었다. 하나님을 모욕하고 성도들과 사도들을 무참히 살해하던 헤롯왕이 충에 먹혀 죽은 것과 같았다. (행12:23) 그후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제임스 6세가 취임하여 통치하는 기간에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영국 교회 대표들은 제임스 6세를 만나 교회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신앙의 자유를 호소했으나 묵살당하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아 청교도들 사이에는 의견이 둘로 나뉘게 되었다. 계속 투쟁하자는 사람과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나자는 사람으로 나뉜 것이다. 청교도 신앙을 사수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으나 방법에서 의견이 갈라졌다. 결국 청교도의 일부는 정든 고국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일단 네델란드로 갔으나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고국을 떠나 네델란드로 갔던 청교도들은 몇 년 후 아메리카로 가기로 결심하고 1620년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암스테르담 항구를 떠났다. 61일간의 항해 끝에 케이프코드에 도착했으나 인디언들의 위험을 느껴 다시 바다로 나가 배회하다 다시 상륙한 곳이 플리머스 였다. 플리머스에 도착한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눈도 많이 왔다. 그들은 식량난과 추위와 질병과 처절하게 싸워야 했다.그들의 삶은 말할 수 없이 비참했다. 그들은 주로 도시에 살던 귀족 계층으로 육체적 고생과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이었다. 겨울을 지내는 동안 44명이 죽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건강이 말이 아니었다. 기아와 영양실조로 말미암아 대부분 폐결핵을 앓는 등 최악의 상황에 있었다. 1621년 초하루에는 하루에 세 명이나 세상을 떠났다. 사람이 죽어도 몰래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사람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인디언들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메이 플라워 호는 이듬해 봄까지 플리머스에 정박해 있었다.청교도들의 비참한 상황을 본 선장은 돌아갈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한 명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고생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자는 후퇴할 것이 아니라 이 봄에 새 땅에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러던 중 이민온 지 3년이 되는 해 극심한 가뭄으로 한 해 농사를 완전히 포기해야하는 상황에 부딪혔다. 청교도들은 과거 영국에서부터 어려울 때는 금식하며 기도했는데, 그날도 금식하며 기도하려고 할 때 한 노인이 제안을 했다. "우리가 어려운 문제 만을 생각하고 금식하며 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날로 정합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금식도 좋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오히려 감사기도를 하기로 한 것이다. 감사기도를 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기적이 일어났다. 비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해에는 메뚜기 떼가 창궐하여 잘된 농사가 하루 아침에 폐허가 될 위기에 처했었다. 그 때 성도들이 모여 금식하며 부르짖은 적이 있다. 역시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셨다. 떼로 몰려 다니며 농작물을 집어 삼키던 메뚜기 떼가 하루 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숱한 고난 속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감사했던 신앙이 청교도 신앙이다.

순교를 두려워 않는 그들의 신앙을 하나님은 기뻐 하셨으나 청교도를 핍박했던 교권주의자들 입장에서는 그들은 이단자요 배교자요 사단의 무리였다. 그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평안과 안락함이 보장된 삶을 포기하고 고난과 고통을 택했고 배부름보다 배고픔을 택했다.육적 기쁨보다 영적 기쁨을 추구했고 육적 축복보다 영적 축복을 더 중요시 했다. 육적으로는 불행했으나 영적으로는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핍박했던 교권주의자들은 영적인 것보다 육적인 것을 추구했고 모든 것을 누렸다. 그러나 진정한 영적 기쁨도 행복도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세상적으로는 모든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었으나 영적으로는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는 집에 있는 탕자와 집을 떠난 탕자가 나온다. 집에 있는 탕자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나 감사를 모르는 불행한 탕자요, 집을 떠난 탕자는 모든 것을 잃었으나 감사를 발견한 행복한 탕자이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요 탕자이다. 단지 감사를 아는 탕자와 감사를 모르는 탕자가 있을 뿐이다. 청교도를 핍박했던 무리들은 불행한 탕자요 핍박받은 청교도들은 행복한 탕자였다.